항목 ID | GC08000175 |
---|---|
한자 | 新里 |
영어공식명칭 | Si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 신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용범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줄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임진왜란 때 풍천 노씨(豊川盧氏) 일가가 난을 피해 들어와 살면서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윗뜸과 가운데뜸, 새양건너뜸으로 마을을 이루어 신촌(新村)[새말]이라 하였다가 신리(新里)로 개칭하였다. 1789년(정조13) 간행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도 지명이 보인다.
화전(花田)마을은 조선 전기 평강 채씨(平康蔡氏)가 터를 잡았는데, 채홍철(蔡弘哲)이 밭갈이를 하던 중 땅 속에서 확독[돌확] 하나가 나와 흙을 털고 자세히 살펴보니 화전(花田)이라 새겨져 있어 마을 이름을 꽃밭골, 즉 화전동(花田洞)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신정마을은 일제 강점기 고부들 기슭에 올망졸망 자리한 신흥리, 강남정, 오정리, 수반 등의 마을들을 합쳐 신흥리의 ‘신(新)’, 오정리의 ‘정(亭)’ 자를 따서 신정(新亭)이라고 이름하였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부안군 건선면의 덕성리, 주분리, 오정리와 화전동, 신정리, 신흥리, 동령리, 목중리, 난산리, 월산리, 남면리, 원동리의 각 일부, 고창군 북일면 오정리 일부를 병합하고 건선면 신리로 개설하였다. 1931년 7월 건선면을 줄포면으로 개칭하였다.
[자연환경]
줄포면 소재지에서 동남으로 3.5㎞에 있다. 서쪽에서 서해안 고속 도로가 남북으로 지나간다. 아강 저수지와 신제가 있다.
[현황]
신리의 동쪽은 정읍시 고부면 백운리, 남쪽은 고창군 흥덕면 용반리, 서쪽과 북쪽은 줄포면의 우포리, 장동리, 난산리와 접한다. 2020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3.30㎢이며, 원신리(元新里)·화전리·덕성리(德成里)·신정리의 4개 행정리에 118가구, 199명[남 98명/여 10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원신마을은 서남으로는 덕성마을, 서북으로는 화전마을[꽃밭골], 남으로는 들판 너머로 신정마을, 동으로는 난산리의 남월마을과 이웃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해마다 음력 정월이면 줄다리기, 농악 놀이 등을 하며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성대하게 지내 군내에서도 농악 놀이를 잘하는 마을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마을 동편에 1963년 개교한 난신초등학교가 있었으나 1997년 폐교하고 그 자리에 백합노인대학이 들어섰다.
화전마을은 원신마을 서북에 있어 장동리 원고개[院峙]를 넘어 줄포 시내와 통한다. 마을 오른쪽에 화락골이 있고 왼쪽에 꽃밭골이 있어 꽃과 관계가 많은 마을이다. 마을 형국이 연꽃 모양이어서 이곳 어디에 명당 자리가 있다 하여 예부터 풍수가들이 자주 찾았다는데,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고창 방장산(方丈山)에서 뻗어 나온 산맥 한 가닥이 이곳을 지나면서 연화도수(蓮花倒水)의 명당 혈을 만들어 놓고 상서면 감교리의 유정재를 지나 변산으로 이어졌다고 전한다.
덕성마을은 원신마을 서편에 이웃한 마을로 서쪽의 십리동을 지나 줄포 시내로 통한다. 이 마을은 무오사화(戊午士禍) 때 행상인 박씨, 김씨, 고씨 세 사람이 배를 타고 가다가 폭풍우를 만나 예전에는 바닷가였던 이 마을까지 떠밀려 와 정착하게 되면서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신정마을은 줄포 시내에서 동남으로 약 5㎞ 지점, 고창군 흥덕면 용반리 남당(南唐)마을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 마을을 이룬다. 조선 후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채홍국(蔡弘國)[1534~1597]이 부안 출신으로 바로 이 남당마을로 이주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