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1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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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蓮里 |
영어공식명칭 | Baekryeo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백련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회선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변산의 의상봉과 와우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문수동 계곡 아래에서 못을 이루고 그 못에서 하얀 연꽃이 피어났기 때문에 백련동이라고 불렀으며, 백련(白蓮)마을은 이로부터 유래한 지명이다. 삼산마을은 백련리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마을로서 산 세 개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삼산(三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삼매 또는 산매라고도 불리며, 마을의 도로명은 가락골길이다.
삼산마을 서쪽에 금광(金光)마을이 있다. 마을 뒷산에 있었던 금광사(金光寺)라는 절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백련초등학교 인근에 있는 금산(金山)마을은 원래 노계마을에 속했는데, 마을이 점점 확장하고 또한 노계마을과는 변산로(邊山路)로 나누어졌기 때문에 1983년 행정리로 독립하였다.
백련마을 동남쪽 방향으로 들어가는 변산 계곡을 문수동(文殊洞)이라고 하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문수사가 있었다고 전한다. 문수마을은 문수사 언저리에서 생겨난 마을이다. 신촌(新村)마을은 문수동 입구에서 백련마을과 마주 보며, 마을이 처음 형성되었을 때에는 월포리에 속하였다가 마을이 점점 커지자 1962년 행정리로 독립하였다.
비득(飛得)마을은 비들기재 너머 산자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새만금 방조제가 생기기 전에는 바닷물이 마을 앞에까지 넘실거리던 어촌이었다. 마을 앞 갯벌은 마을 주민들의 주요한 삶의 터전이었다. 비득마을 안쪽 골짜기에는 대광(大光)마을이 있고 바로 옆 골짜기에는 소광(小光)마을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광마을은 광계리(廣溪里)에서 대광(大廣)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대광(大光)으로 한자가 바뀌었다. 백련리 서북쪽에 자리한 월포마을은 새만금 방조제가 완공되기 전까지는 풍요로운 포구였다. 임진왜란 때 잿더미가 되었던 마을을 다시 일으키면서 반달 모양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월포(月浦)라고 불렀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이전에는 부안군 하서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하서면의 월포리, 문수동, 비득치, 대광리, 소광리와 노계동, 금광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하서면 백련리로 개설하였다.
[자연환경]
서쪽으로 얼마 전까지 바다였던 새만금 간척지가 있다. 백련리는 산과 들과 바다를 안고 있는데 백련마을 등 9개의 마을은 변산에 의지하여 계곡과 산자락에서 마을을 이루었고, 노계마을은 들판에, 월포마을은 해안가에 자리 잡았다. 하서면 백련리와 변산면 중계리의 경계를 이루는 변산 능선에는 변산에서 제일 높은 의상봉[508m]이 솟아 있고, 변산의 백련리 계곡에는 문수제와 금광제 등 저수지 두 곳이 있다.
[현황]
백련리의 동쪽은 하서면 석상리와 상서면 청림리, 남쪽은 변산면의 중계리와 대항리, 서쪽은 황해, 북쪽은 하서면 장신리와 접한다. 면적은 16.01㎢이며, 이 중 밭이 1.52㎢, 논 0.72㎢, 임야 11.78㎢ 등이다. 2020년 12월 31일 현재 삼산리·금광리·노계리·금산리·월포리·신촌리·문수리·백련리·대광리·비득리·소광리의 11개 행정리에 444가구, 750명[남 369명/여 38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부안에서 격포 방향으로 국도 제30호선이 지나가고, 옛길인 변산로가 여러 마을을 거치면서 백련리를 관통한다.
월포마을 앞에 부안군 신재생 에너지 단지가 들어섰다. 부지 35만 6000㎡에 신재생 에너지 테마파크, 실증 연구 단지, 산업 단지 등을 조성하여 2011년 완공하였다. 신재생에너지의 연구개발과 상용화의 실증 및 제품 생산, 체험 관광을 목적으로 건설된 국내 첫 특화 단지이다.
교육기관으로 금산마을과 신촌마을 사이 변산로 남쪽에 백련초등학교가 있다. 백련초등학교는 1947년 개교하여 2020년 2월까지 69회에 걸쳐 2,983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는데, 인근의 장신초등학교를 통합하였지만 2020년 3월 기준 학생 수가 15명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