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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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水里 |
영어공식명칭 | Daesu-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 대수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용범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백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수탱이의 큰 마을이므로 큰수탱이, 또는 대수라고 하였다. 수탱[水湯]이는 ‘끓는 물’이란 뜻이다. 마을 이름의 정확한 생성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두 가지 설이 전한다. 대수리의 지형이 천마입구(天馬入口)의 형국이어서 말에게 먹일 말죽을 끓여야 하므로 ‘수탕리’라 하였다는 설과, 옛날 어떤 사람이 마을의 서편 언덕에 앉아 수성리 앞 방죽에서 노는 오리를 낚시질을 하여 잡아먹으므로 한 도인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백지에 ‘불 화(火)’ 자를 써서 방죽에 던지니 물이 부글부글 끓어 오리가 내려앉지 못했다는 데서 생긴 이름이라는 설이 그것이다.
큰수탱이[대수마을]는 평교리 외거 삼거리에서 정읍시 이평면 쪽으로 가는 도로 변, 하청마을 다음에 자리한다. 마을의 세가 커짐에 따라 둘로 나뉘었는데, 큰수탱이는 지금의 대수(大水)마을, 앞수탱이는 지금의 소수(小水)마을이다. 동쪽은 동진강에, 동남쪽은 동진강 지류인 덕천(德川)과 맞닿은 데다 지대가 낮아서 경지 정리와 수리 시설이 안 되었던 1930년대 이전에는 매해 한두 차례 홍수 피해를 입었다.
소수마을은 ‘3,000냥을 품은 마을’이라는 자찬 설화(自讚說話)가 전하는데, 마을의 터가 좋아서 1,000냥,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선량해서 1,000냥, 우물이 좋아서 1,000냥이라고 한다.
석교(石橋)마을은 대수마을 동쪽 덕천(德川) 변 들판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덕천 중간에 큰 바위가 마치 다리처럼 놓여 있는데, 그 바위를 넘어 개천을 건너 다녔기에 독다리[석교(石橋)]라고 하였다. 비록 조수가 닿는 강변의 낮은 지대이지만 지하에서 석간수가 풍부하게 샘솟았고, 물맛이 좋기로 인동에 소문이 나 일본 사람들이 청량음료로 일본에 가져가기도 했다고 전한다.
남월(南月)마을은 대수마을 동북쪽, 동진강과 덕천을 끼고 들판 가운데에 자리하였다. 만석보 바로 하류 지점이다. 처음 이름은 초생달 같다 하여 ‘송월(松月)’이라 하였으나 일제 강점기인 1940년쯤 남평(南坪)과 월평(月坪)을 병합하여 ‘남월’이라 하였고, 그 후 송월과 석교를 합쳐 ‘송석’이라 하였는데, 광복 후 송월과 남월을 다시 합하여 송남월(松南月)이라 하였다. 행정리 이름은 ‘남월리’이나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송남월’로 부르며, 이 때문에 마을의 버스 정류장 표지판에도 ‘송남월’로 쓰고, ‘송월·남평 경로당’이라 부른다.
월평마을은 남월마을과 동북으로 이웃한 마을로 송월마을과 남평마을의 끝 자를 따서 월평이라고 하였다. 동진강 둑 바로 밑 외진 마을로, 전하는 말에 따르면 동학 농민 혁명군이 관군에 쫓기자 이곳으로 숨어 들어와 갈대밭에 움막을 짓고 산 것이 점차 마을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그 집터를 오막집 자리, 또는 뙷집 자리라고 부른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이전에는 고부군 거마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거마면의 송월리, 석교리, 월평리, 남평리, 소수리, 월상리, 석지리, 월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부안군의 백산면 대수리로 개설하였다.
[자연환경]
동으로는 동진강이 흐르고, 남으로는 정읍시 이평면과 경계를 이룬다.
[현황]
대수리의 동쪽과 남쪽은 정읍시 이평면의 두전리와 장내리, 서쪽과 북쪽은 백산면의 하청리, 거룡리, 원천리와 접한다. 2020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3.59㎢이며, 대수리·소수리·석교리·남월리·월평리의 5개 행정리에 123가구, 197명[남 94명/여 10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경지 정리와 수리 시설이 안 되었던 1930년대 이전에는 지대가 낮아서 비만 오면 홍수가 나서 징을 치고 마루 짝에 의지하여 근처 높은 곳으로 피난하였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