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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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浦里 |
영어공식명칭 | nampo-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남포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대홍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보안현의 남쪽에 자리한 포구여서 남포(南浦)라고 하였다. 고현리(古縣里)는 과거 희안현(喜安縣)의 치소가 있던 곳으로 구석동 또는 원천동(元泉洞)이라고도 하였다. 용사동(龍社洞)은 용사동(龍蛇洞)과 사창(社倉)마을을 행정적으로 통합하면서 만든 이름인데 음으로만 보면 여전히 용사마을이다. 주민들은 ‘용샛골’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에 뱀이 개구리를 쫓는 형국인 생사축와형(生蛇逐蛙形)의 명당이 있다고 전한다. 만회(萬回)마을은 만석동(萬石洞)과 회룡동(回龍洞)을 합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남포 남쪽에 있는 성방청마을에는 옛날 형방청이 있었다고 하며 사창마을 동쪽에 있는 논인 옥터 거리는 옛날 옥(獄)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이전에는 부안군 입하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입하면의 용사동, 만석동, 회룡리, 원천동, 고현리, 사창리, 상입석, 외유포, 염수동, 장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보안면 남포리로 개설하였다.
[자연환경]
보안면 남포리 630번지 선에서 출발해 줄포면 해안으로 빠지는 6.9㎞의 신창천이 마을의 서쪽 경계를 따라 남쪽으로 흘러 곰소만으로 빠진다. 신창천은 남포천(南浦川)이라고도 하며 줄천(乼川) 혹은 남개라고도 불렀다. 남포리는 과거 포구가 있던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수량이 급격하게 줄고 영전 저수지가 조성돼 뱃길을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서쪽으로 상서면 청림리와 경계를 이루는 백운봉(白雲峰)[320m]이 있고, 사창재를 넘어서면 남포제(南浦堤)[남포 저수지]가 있다.
[현황]
남포리의 동쪽은 보안면의 상입석리·월천리, 남쪽은 보안면의 유천리와 영전리, 서쪽은 보안면 우동리, 북쪽은 상서면의 감교리, 청림리와 접한다. 면적은 5.99㎢이며, 이 중 밭이 0.94㎢, 논 0.70㎢, 목장 용지 0.13㎢, 임야 3.39㎢ 등이다. 2020년 12월 31일 현재 용사리·만회리·원천리·남포리·신안촌리의 5개 행정리에 194가구, 331명[남 167명/여 16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남포 저수지를 지나는 부안로 주변에 용사동, 회룡동, 만회마을, 만석동, 사창마을이 있고, 청자로에서 분기하는 남포로 주변의 변산반도 국립 공원 경계 구역 아래에 원남포마을, 원천동마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만석동은 감나무가 많은 마을로 천주교 신자들이 예전부터 많이 살아서 천주교 공소[만석공소]가 세워져 있다. 또한 청자로 주변에는 외포마을, 맞은편에는 상입석리와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신안촌마을이 있다.
남포리에는 과거 보안현의 현청이 있던 고현리와 사창 등이 있어 상당히 번창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부령과 고부, 태인, 고창, 흥덕 등에서 받아들인 세곡을 사창에 보관하였다가 제안포에서 조운선을 통해 수도로 운송하였다. 창고를 지키는 군졸, 세곡을 나르는 인부과 아전들이 상주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1800년대 후반 주산면 백석리 홍해에 살았던 기행현(奇幸鉉)이 쓴 『홍재일기(鴻齋日記)』에는 사창(社倉)과 사창시(社倉市)을 다녀왔다는 기록이 자주 보인다. 마을의 중앙을 남북으로 국도 제23호선이 지나간다. 1957년 완공된 남포 저수지의 제방 길이는 30m, 총 저수량은 44만 7000㎥, 수혜 면적은 115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