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0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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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石里 |
영어공식명칭 | baekseo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백석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대홍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백석리(白石里)는 원래 큰 들판이라는 뜻의 ‘흔들’이었으나 훗날 ‘흰돌이’ 또는 ‘흰돌지[흰돌치]’가 되었다가 한자 지명인 백석(白石)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마을 한가운데에 우물을 팠더니 흰 돌이 많이 나와 흰돌지, 백석리로 부르기 시작하였다는 설도 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후기에는 부안군 남하면(南下面)과 남상면(南上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백석, 홍해, 송천, 장동, 예동[안여술], 유동 등을 병합하고 으뜸 마을인 백석의 이름을 따서 주산면 백석리로 개설하였다. 1918년 조선 총독부가 제작한 『조선 지형도』「부안」에 백석리를 중심으로 장내리(壯內里), 유동리(柳洞里), 내호리(內狐里), 신기리(新基里), 돌천리(乭川里) 등의 지명이 보인다. 장내리는 현재의 장동이고, 내호리는 안여술 또는 예동이며, 신기리는 홍해 자리에 잘못 표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보다 앞서 1789년(정조 13) 펴낸 『호구 총수』에는 남상면의 홍애리(洪涯里)[현 홍해마을]와 남하면의 내호리(內狐里)[안여술, 현 예동마을] 지명이 보인다.
[자연환경]
서쪽으로 주산면 사산리 782번지 선에서 발원해 계화면 의복리 해안에 이르는 총연장 17㎞의 주상천과 주산면 예동길 99-8[백석리 286번지] 선에서 출발해 주상천으로 합류하는 총연장 2.4㎞의 소포천이 북류해 새만금 유역까지 이어진다. 과거에 바닷물이 유입된 지역이라 개흙이 관찰된다.
동북쪽에는 승암산(升巖山)[84m]이 있는데 『한국 지명 총람』에서는 호파산(胡破山)이라는 다른 명칭과 함께 “옛날 이 산에 진을 치고 있던 오랑캐들이 전투에서 크게 진 것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됫박산, 모개산, 도소봉(道所峰)이라고도 불린다. 예동과 장동 일대에 야트막한 야산이 있으나 대부분 지역이 4m~10m 내외 평지에 가깝다.
[현황]
백석리의 동쪽은 부안읍 신흥리와 내요리, 남쪽은 주산면 소주리와 갈촌리, 돈계리, 서쪽은 상서면 고잔리, 북쪽은 행안면 대초리와 접하여 경계가 매우 복잡하다. 면적은 3.46㎢이며, 이 중 밭이 0.55㎢, 논 1.77㎢, 과수원 0.02㎢, 목장 용지 0.13㎢, 임야 1.80㎢ 등이다. 2020년 12월 31일 현재 백석리·장동리·예동리·홍해리·송천리의 5개 행정리에 150가구, 278명[남 139명/여 13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주상천[두포천]과 소포천을 통해 황해의 바닷물이 유입되어 농작물이 염해와 수해를 입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현재는 경지 정리를 통해 수해 피해는 크게 줄었으며, 1968년 섬진강 도수로 사업으로 예동마을과 유동마을을 가로질러 농업용수가 원활하게 공급된다. 백석리는 예전부터 논농사와 밭농사가 주요 경제 활동이었으나,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70년대 후반부터 축산업을 시작하였고, 최근에는 시설 원예, 친환경 쌀농사를 확대하고 있다. 1965년 석계초등학교가 개교하였으나 학령 인구가 감소하며 주산초등학교 석계분교로 격하되었다가 1998년 폐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