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0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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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士山里 |
영어공식명칭 | sasa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사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대홍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사산리(士山里)는 ‘뉘역메’에서 나온 지명이다. ‘뉘역’은 ‘뉘엉’ 또는 ‘도롱이’라고도 하며 짚이나 풀로 엮어 만든 비옷[사의(蓑衣)]을 말한다. 산의 펑퍼짐한 모습이 도롱이를 펼쳐 놓은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한자로 표기하면서 도롱이 사(蓑) 자를 써서 ‘사산(蓑山)’이라고 하였다가, 후에 쓰기가 복잡해지자 선비 사(士) 자로 바꾸어 쓰던 것이 굳어졌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입산(笠山)’이라고도 표기한다.
송정(松亭)마을은 원송정인 본뜸과 사양동뜸, 방죽목뜸, 아랫뜸으로 이루어졌는데 본뜸에 큰 소나무 한 그루가 다섯 개의 가지를 뻗어 마치 정자처럼 보인다고 ‘오송정(五松亭)’이라 하였다가 후에 ‘오(五)’ 자를 떼고 송정리라고 불렀다. 산돌리(山乭里)는 원래 ‘멧돌리’였는데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 주민들이 많다. 마을 뒤에 돌로 이뤄진 산이 있어 생긴 이름이다. 신흥(新興)마을은 ‘장밭들’이라고 하며, 밭이 긴 들판이라는 의미와 과거 나당 연합군에 맞서 싸우던 백제 부흥군의 장수들이 패했다는 ‘장패(將敗)들’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이전에는 부안군 소산면(所山面)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송정리와 사기점리, 연제리, 연봉리, 화정리, 제내리의 각 일부와 상서면 유정리 일부, 남하면 돈계리, 구산리, 청계리의 일부 지역을 병합하고 주산면 사산리로 개설하였다.
[자연환경]
남쪽에 자리한 배메산이 보안면과 경계를 이루고, 북서쪽에는 뉘역메[사산(士山), 105.4m], 거북메[구산(龜山), 35m]가 솟아 있다. 주산면 사산리 782번지 선에서 발원해 계화면 의복리 해안에 이르는 총연장 17㎞의 주상천이 있다. 과거에는 구불구불한 사행천(蛇行川)의 형태로, 갑문이 없던 과거에는 황해의 바닷물이 역류하여 인접한 주산면 돈계리까지 영향을 미치는 감조 하천(感潮河川)이었으나 현재는 직강 하천으로 고쳐졌다.
[현황]
사산리의 동쪽은 주산면 갈촌리와 소산리, 남쪽은 보안면 월천리, 서쪽은 상서면 감교리, 북쪽은 주산면 돈계리와 접한다. 면적은 6.17㎢이며, 이 중 밭이 0.90㎢, 논 2.06㎢, 임야 1.80㎢, 목장 용지 0.15㎢ 등으로 주산면의 8개 리 가운데 가장 넓다. 2020년 12월 31일 현재 사산리·농원리·송정리·산돌리·신흥리의 5개 행정리에 175가구, 279명[남 139명/여 14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서쪽 끝으로는 국도 제23호선이 지나가며 동쪽 끝에서 지방도 제707호선이 남북으로 지난다. 주산면 소재지에서 상서면 유정 삼거리에 이르는 종유로가 사산리의 중심을 동서로 가로지른다. 상서면과 경계에 있는 사산 저수지는 1957년 초 착공해 만 6년 만인 1962년 말 완공되었다. 총 수혜 면적은 644만㎡, 총저수량은 138만㎥로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1급 저수지이다.
시조창의 명인이자 1975년 국가 무형 문화재 제41호 가사 보유자인 석암(石菴) 정경태(鄭坰兌)[1916~2003]가 뉘역메마을 출신이다. 사산마을에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40호인 사산리 와요지(士山里瓦窯址)가 있으며, 농원마을 뒤편에는 조선 전기 문신 채충경(蔡忠敬)을 향사하는 사산서원(士山書院)이 있다. 산돌리는 주산면 덕림리의 수월리(水越里)와 함께 19세기 천주교 박해 때 신자들이 숨어들어 와 옹기그릇을 빚어 생계를 이어 갔던 부안 지역 천주교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