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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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井金島 |
영어공식명칭 | Jeonggeumdo Island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정금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진성 |
전구간 | 정금도 - 전라북도 부안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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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정금도 -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정금리 |
성격 | 섬 |
면적 | 110,000㎡ |
둘레 | 3㎞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정금리에 있는 섬.
[개설]
정금도(井金島)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은 인동 장씨(仁同張氏)들이다. 한양에서 벼슬을 하던 장찬(張燦)이라는 사람이 위도(蝟島)로 유배를 당해 정금도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장찬은 장 희빈(張禧嬪)[1659~1701]의 숙부로 오늘의 서울 부시장쯤 되는 높은 벼슬을 하다가 위도로 유배를 왔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숙종 22년 2월 7일]에 나온다. 장찬은 당시 청어의 산지인 위도에서 청어잡이로 큰돈을 벌었다고 전한다.
[명칭 유래]
처음에는 섬의 모양이 솥뚜껑과 같다 하여 솥 정(鼎) 자를 붙이고 이곳에서 금이 나왔다 하여 금(金) 자를 더하여 ‘정금도(鼎金島)’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에 이 마을에 물이 많다고 하여 샘 정(井) 자로 바뀌어 ‘정금도(井金島)’라 부르고 있다.
[자연환경]
정금도는 동경 126° 18', 북위 35° 30'에 위치한다. 정금도의 면적은 11만㎡, 해안선 길이는 3㎞이다. 위도로부터 400m 정도 떨어져 있다. 위도의 진리 마을 앞쪽에 길게 누워 있는 섬인 정금도는 2020년에 시멘트 육교로 위도와 연결되었다. 기존의 연도교(連島橋)는 만조시 교량이 침수되는 잠수교(潛水橋)라 통행에 불편을 초래하면서 주민들의 불편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정금도는 위도 팔경의 하나인 정금취연(井金炊煙)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동트기 전 집집마다 밥을 지을 때면 불을 피우는 연기가 굴뚝을 통해 흩날리는 모습이 멀리서 보기에 매우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정금도는 위도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데, 만조 때는 가깝고도 먼 섬이 되지만 간조가 되면 걸어서 왕래할 수 있다.
[현황]
2007년 3월 1일, 깊은 밤중에 해일이 밀려와 정금도를 덮쳐서 4명이 사망하였고, 주택과 상가가 180여 일 동안이나 침수되었고, 차량 20대와 선박 56척 등이 전복되거나 없어지는 피해를 입었다. 또 정금도와 위도를 연결하던 정금교가 유실되어 오갈 수 없어 큰 불편을 겪었다. 정금교는 1960년대 양곡 사업으로 건설한 잠수교로, 정금도에서 위도 벌금리를 잇는 길이 235m[순 교량 연장, 도로까지 포함 시 450m], 폭 3m, 높이 3.5m 규모로 부안군이 보강 공사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기상청에서는 지형적 영향과 만조 등의 상호 작용으로 발생한 사고라고 발표하였지만, 주민들은 새만금 방조제 때문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방조제가 막히기 전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부안군에서는 위도면의 생활 환경 개선과 위도 종합 개발 계획 사업에 착수하여 가장 시급한 상수도 보급을 위해 정금도까지 해저 관로를 통해 상수도 공급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