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0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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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蝟島 |
영어공식명칭 | Wido Island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진성 |
전구간 | 위도 - 전라북도 부안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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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 소재지 | 위도 -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
성격 | 섬 |
면적 | 11.14㎢ |
둘레 | 36㎞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에 있는 섬.
[개설]
위도(蝟島)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수군(水軍)의 요지였고 조선 시대에는 유배지였다. 1896년(고종 33) 전라도를 전라남북도로 개편할 때 고군산군도와 더불어 전라남도 지도군(智島郡)에 편입되었고, 1914년 지도군이 없어지자 영광군에 편입되었다. 이후 1963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전라북도 부안군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위도는 서해안의 전초 기지 역할을 하는 요충지로 조선 시대에는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가 주재하며 사법과 행정을 총괄하는 업무를 관장하였다.
[명칭 유래]
생김새가 고슴도치와 닮았다 하여 고슴도치 위(蝟) 자를 붙여 위도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자연환경]
위도는 동경 126° 20', 북위 35° 35'에 위치한다. 위도의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말에 분출한 화산암이 기반암을 이루고 있다. 위도는 동북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다. 동남쪽 해안은 거의 직선을 이루나 서북쪽 해안은 돌출부와 소만입이 발달하여 해안선이 복잡하다. 망월봉(望月峰)[255m]을 비롯하여 곳곳에 200m 전후의 구릉성 산지가 발달해 있다. 연안에는 갯벌이 분포하며,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다. 1월 평균 기온은 -0.2℃, 8월 평균 기온은 25.5℃, 연 강수량은 1,136㎜이다. 위도는 전라북도에서 가장 큰 섬으로 면적은 11.14㎢, 해안선 길이는 36㎞이다. 서울 여의도의 약 5배 정도이다. 변산반도 격포항에서 서쪽으로 14㎞ 거리에 있으며 위도를 중심으로 주위에 6개의 유인도와 24개의 무인도가 있다. 북쪽에 식도(食島)가 있으며, 정금도(井金島)와 방조제로 연결된다. 그 밖에 큰딴치도·딴달래섬·거륜도 등 부속 섬들이 있다.
[현황]
위도는 변산반도에서 서쪽으로 14.6㎞ 지점에 있으며, 부안군 위도면의 주도에 해당한다. 바다를 끼고 도는 해안 도로가 잘 닦여 있으며 여객선이 도착하는 파장금에서 시작해 섬을 한 바퀴 도는 해안 도로는 20㎞ 정도이다. 위도 남쪽 바다가 조기잡이의 최대 보고인 칠산 어장(七山漁場)이었다. 칠산 어장이 번영할 당시에는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파장금마을에 북적이기도 하였다. 1970년대에 칠산 어장을 비롯한 서해에서 조기가 사라지자 고등어를 비롯하여 삼치, 병어 등의 어장이 주류를 이루면서 지금도 많은 어선들이 조업을 하고 있다.
위도에서 격포항까지 정기 여객선으로 50분 거리이다. 위도는 육지에 가까이 있으면서 섬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어 접근성이 좋다. 또 바다와 갯벌에서 잡은 다양하고 풍성한 먹을거리가 있으며, 한때 대규모 조기 파시(波市)로 유명한 섬이었다. 아울러 갯벌 체험과 등산까지 즐길 수 있다. 여객선이 닿는 위도 장금항은 격포항에서 출발한 여객선이 제일 먼저 닿는 곳이다. 파장금 포구가 번창할 때에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요릿집이 6개, 한국인이 경영하는 음식점이 35개나 되었다. 파장금이라는 지명은 많은 어선들이 왕래하고 폭풍이 몰아치면 어선들이 대피하는 마을이며 물결이 길면 어선이 모이는 곳이라 하여 붙여졌다. 혹은 파도가 치면 금, 즉 돈이 몰려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위도면 사무소가 있는 부안군 위도면 진리 마을은 다른 지역에 비해 논이 있어 논농사도 짓고 있다. 현재 부안군 위도면 진리에는 위도중고등학교 및 우체국, 농협, 농협 하나로마트, 위도보건지소 등의 행정 기관과 편의 시설이 있다. 위도면 사무소 뒤쪽에는 위도 관아(蝟島官衙)가 있다. 1682년(숙종 8)에 설치한 수군 진영인 위도진(蝟島鎭)의 관아 건물이다. 진리마을에서 파장금 못 미쳐 작은 마을이 시름이다. 지형이 떡시루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시루로 불리다가 지금은 시름이라고 불린다. 위도 전체의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가 시름에 있다.
진리에서 서북쪽으로 1㎞ 지점에 위치한 벌금리는 조선 후기에 사람들이 정착한 마을로 알려져 있다. 벌금리는 예전 위도의 관문으로 지대가 낮아서 소금을 생산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이곳의 당집 근처 야산 정상에는 수백 년 된 후박나무 숲이 있다. 벌금 선착장 뒤편에 위도 해수욕장이 있다. 고운 모래와 맑은 물로 유명한 위도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으로 수심이 얕아서 가족 피서지로 유명하다. 인근에 깊은금, 미영금, 논금 등의 마을이 있다. 또 도장금이라는 마을에는 위도 주민의 식수원인 저수지가 있으나 현재 거주하는 사람들은 없다.
위도 북동쪽 끝이자 파장금항의 반대쪽 끝, 고슴도치의 꼬리가 시작되는 부분에 위치한 마을이 갯벌 체험을 하는 전막리[살막금]이다. 아침저녁으로 그물을 쳐서 고기잡이를 하던 마을로 살막금이라는 마을 지명의 어원이다. 전막리마을에서 언덕을 넘으면 위도 띠뱃놀이로 유명한 대리마을이 있다. 진리에서 치도리를 거쳐 서쪽으로 약 6㎞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마을 형태가 큰 돼지의 목 형국이라 하여 ‘대저항’이라고 불렸는데, 그 후 ‘대저항’이 ‘대장’으로 불리다가 큰 대(大) 자에 마을 리(里) 자를 붙여 ‘대리’라 하였다. 대리에 대리초등학교가 있었으나 폐교되었다. 진리에서 남쪽으로 1㎞ 떨어진 곳이 치도리이다. 치도리 마을은 꿩 모양을 하고 있어서 ‘치도리’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치도리는 농업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예전에는 칠산 어장의 중심지로 파시가 열리던 곳이다. 물이 빠지면 갯벌이 그대로 드러나 항구로서 기능을 잃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