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031 |
---|---|
한자 | 窟- |
영어공식명칭 | Gulbawi Rock |
이칭/별칭 | 호암(壺岩)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래철 |
전구간 | 굴바위 -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 |
---|---|
성격 | 동굴 |
높이 | 10m |
길이 | 30m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 있는 동굴.
[명칭 유래]
굴이 깊어 굴바위라 하였고, 호리병처럼 깊어 호암(壺岩)이라고도 한다.
[자연환경]
변산반도 남동부에 위치한 남옥녀봉[434.4m]의 남사면 중턱에 위치한다. 우동 저수지에서 왼쪽 계곡을 따라 회양재 고개를 향해 오르는 등산길의 오른쪽에 있다. 변산반도에는 해안가에서 해식 동굴을 볼 수 있고 내륙에서는 풍화 동굴을 관찰할 수 있다. 풍화 동굴은 암석의 절리면(節理面)을 따라 풍화가 진행되어 형성된 동굴인데 변산반도에는 대표적으로 울금 바위와 굴바위가 있다.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에 있는 굴바위는 유문암(流紋巖)이라는 화산암이 풍화를 받아 형성된 천연 동굴이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의 절리면이 파쇄하면서 생성된 풍화 동굴로, 굴 입구에서 끝 지점까지 약 30m쯤 되며 바닥에서 천장까지 가장 높은 곳은 10m가 넘는다.
[현황]
굴바위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우동 저수지에서 왼쪽 계곡에 있는 대불사(大佛寺)를 지나 산길을 올라야 하고 오른쪽 산 중턱에서 만날 수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굴바위 천장에는 ‘옥정’ 또는 ‘참샘’이라 부르는 샘이 있다. 참샘에는 물을 떠 마실 수 있는 은(銀)으로 된 복지개[주발의 뚜껑]가 있었고, 이 복지개로 참샘의 약수를 떠 마시면 모든 병이 나았다고 한다. 특히 나병(癩病)에 특효가 있다고 하여 예전에는 나병 환자들이 많이 찾아와 병을 고쳤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줄포에 사는 일본인이 이 은복지개를 가져가 버렸고, 참샘의 약효 또한 없어졌다고 한다. 또 천장에 ‘아들 구멍’이 뚫려 있는데, 아들을 못 낳는 사람이 돌을 던져 맞히거나 구멍 안으로 넣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굴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좁아져서 끝까지 들어갈 수 없는데, 바닥의 바위에 조용히 귀를 대고 들어 보면 냇물이 흐르는 소리와 파도 소리가 들리고, 이곳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부안군 변산면 해창으로 나온다고 전해지고 있다. 6·25 전쟁 때 변산을 근거지로 삼은 빨치산들이 이곳에서도 취사를 위해 불을 피웠다고 하니, 동굴 안쪽에 연기가 나갈 수 있는 구멍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굴바위 일대 부안군 보안면 우동리는 예전에 우반동(愚磻洞)이라 하여 유명 인사들이 많이 찾아오고 기거하였다. 대표적으로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1435~1493], 「홍길동전(洪吉童傳)」의 저자 허균(許筠)[1569~1618], 실학자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1622~1673] 등을 들 수 있다. 허균이 부안에 왔을 때 굴바위에서 가까운 선계 폭포 위쪽 정사암(靜思庵)에서 소설 「홍길동전」을 완성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전란을 피해 기거하기 좋은 이른바 십승지지(十勝之地) 중의 하나가 부안 변산인데, 그 구체적인 장소가 바로 우동리 일대로 알려져 있다. 굴바위는 생활이 궁핍하여 유랑하다가 도적 떼가 된 사람들의 은신처이기도 하였다. 산수가 빼어나게 좋고 주위에 물산(物産)이 풍요로운 변산, 그 중에서도 굴바위 일대의 우동리는 사람들의 이상향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