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0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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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Buan Ugeumbawi Rock Area |
이칭/별칭 | 울금바위,우금암,개암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지명/자연 지명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산 65-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래철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06월 09일 - 부안 우금바위 일원 명승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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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구간 | 부안 우금바위 일원 - 전라북도 부안군 |
해당 지역 소재지 | 부안 우금바위 일원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산 65-3 |
해당 지역 소재지 | 부안 우금바위 일원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산 65-3 |
성격 | 명승지 |
면적 | 907,398㎡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있는 바위.
[명칭 유래]
삼한 시대에 변한(弁韓)의 문왕이 난을 피하여 이곳에 성을 쌓을 때 우(禹)와 진(陳), 두 장군에게 명령을 내려 왕궁의 전각을 짓게 하였다. 그리고 동쪽은 묘암(妙巖), 서쪽은 개암(開巖)으로 불렀다. 이 전설에 의해 우 장군의 이름에서 ‘우금’이 유래하였다. 또한 바위의 형상을 보면 가운데 부분이 열린 모습이라 ‘개암’이라 하였다. 산 아래에 있는 사찰 개암사(開巖寺)는 우금바위의 별칭인 개암을 이어받은 것이다.
[자연환경]
우금바위는 변산반도의 동부에 위치한 우금산[329m] 정상에 있는 큰 바위로 우금암(禹金巖)이라고도 한다. 동쪽 바위는 40m, 서쪽 바위는 30m이다. 우금산은 개암사 뒤쪽에 있으며, 산의 능선을 기준으로 남사면은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북사면은 부안군 상서면 청림리에 해당한다. 우금바위는 암석의 종류로 보면 화산암의 일종인 유문암(流紋岩)[rhyolite]에 해당한다. 지질학적으로 중생대 화산 활동에서 최후기에 관입되어 형성된 암석이 지상에 노출된 것이다. 우금바위 주변에 넓게 분포하는 유문암은 이곳이 부안 지역 화산 활동의 최후기 중심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우금바위 하단부에는 세 곳에 동굴이 있는데, 분류상 풍화 동굴로 암석의 절리면(節理面)을 따라 풍화가 진행되어 형성된 동굴이다.
[현황]
부안 우금바위 일원은 2021년 6월 9일 명승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907,398㎡이다. 우금산 정상에 우뚝 솟은 우금바위는 산 아래에 있는 개암사에서 오를 수 있으며, 개암사의 병풍 역할을 하고 있다. 우금바위는 산 정상에 있어서 멀리서도 쉽게 보이므로 이 지역 주민들에게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우금바위 아래쪽에 있는 세 개의 동굴 중 가장 작은 북쪽의 동굴은 백제 부흥 운동 당시 군사들에게 필요한 옷을 만들기 위해 베를 짰다 하여 베틀굴이라 한다. 가장 규모가 큰 서남쪽의 동굴은 백제 부흥 운동 당시 복신(福信)[?~663]이 거처한 굴이라 하여 복신굴이라고 한다. 백제 부흥 운동기에 우금산성에서 저항할 때 지휘소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한다. 남쪽의 동굴은 원효방이라고 부르는데, 지표면에서 약 20m나 되는 암벽 중간에 있어 사다리나 밧줄이 없이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곳이다. 원효방은 높이 5m, 폭 5m, 동굴 깊이 10m 정도로 통일 신라 시대 원효 대사(元曉大師)의 수도처로 추정되는 곳이다.
우금바위를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연결한 길이 약 4㎞의 석성(石城)이 우금산성(禹金山城)[전라북도 기념물 제20호]이며, 우금산의 동쪽에 위치한 이른바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삼한 시대 변한의 문왕이 난을 피하여 이곳에 와서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있으며, 660년 백제 멸망 직후 3년간 백제 부흥 운동의 중심지인 주류성(周留城)이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