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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696
한자 徐悅墓表
영어의미역 Grave Monument of Seo Yeol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두월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현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묘표
건립시기/일시 1694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서열|서경조
재질 대리석
높이 120㎝
너비 60㎝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두월리
소유자 부여서씨 종중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두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열의 묘표.

[건립경위]

1694년(숙종 20) 당시 논산시 가야곡면의 대표적 세거성씨인 부여서씨 인물 중 판관을 지내고 통례원 벼슬을 지냈던 서열의 묘소 앞에 있던 비석이 너무 오랜 시간 비와 바람에 의해 심하게 마모되어 비문의 내용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서열의 10세손 서경조가 부여서씨 후손들과 상의하여 자금을 모은 뒤 새 돌을 구해 다시 건립한 것이다.

[위치]

가야곡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02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난 육곡교를 건넌 후 북쪽으로 향하는 지방도 643호선을 타고 다시 약 1.6㎞ 정도 가면 군계보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 동쪽으로 800m 가면 두월리 주변으로 난 호남고속도로 옆 구릉 동남향 사면에 있는 서열의 무덤 앞에 있다.

[형태]

대리석 재질로 만들어져 있으며, 원두비신에 앞면에는 묘표가 새겨져 있다. 크기는 높이 120㎝이고, 폭 60㎝이며, 두께 23㎝이다.

[금석문]

서열의 10세손인 합천군수 서경조가 찬(撰)하고 서(書)하였다. 앞면에 ‘봉훈랑통례원봉례랑서열지묘(奉訓郞通禮院奉禮郞徐悅之墓)’라고 새겨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밝히고 있다. 뒷면에는 음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서열의 가계, 행적 그리고 이 묘표를 세우게 된 이유와 과정 등을 소상히 적어 새겨두었다. 음기에서는 처음 서열의 가계와 그가 지낸 관직 등을 설명한 다음, 부여서씨는 원래 백제시대부터 부여에 머물렀으나 세조서열의 아들 서정수(徐貞壽)가 은진으로 유배를 오면서 이곳에 세거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황]

현재 부여서씨 종중에서 관리, 보존하고 있어 비교적 상태가 양호하여 묘표의 내용을 쉽게 판독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묘표에 새겨진 내용을 통해 부여서씨의 논산 입향 과정을 짐작하고 이후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 추측하여 볼 수 있다. 또한 부여서씨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백제에 두고 그들의 후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열 묘표는 심하게 훼손되어 후손들에 의해 다시 세워진 것으로, 음기에 그 이유나 과정 등이 비교적 자세하게 새겨져 있어 묘표를 세운 내력을 파악할 수 있다.

서열 묘표의 내용을 보면, 가문에 화가 있어 기록하여 두었던 자료들이 유실되어 안타까워하는 심정이 글로 표현되어 있는데, 당시 유학자들이 자신들 가문의 일들을 일일이 기록하여 보관하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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