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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604
한자 巖刻解潮文
영어의미역 Haejomun Carved on the Rock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14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류제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조석표(潮汐表)|암각문
양식 한문|암각
건립시기/연도 1860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송심두|서항순|권황
높이 110㎝(세로)
길이 131㎝(가로)
둘레 14행 190자가 새겨져 있음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142(옥녀봉 남측 암벽면)지도보기
소유자 논산시
문화재 지정번호 논산시 향토유적 제24호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옥녀봉 남측 암벽에 있는 조선 후기 암각문.

[건립경위]

암각 해조문은 하루 유동인구 10만을 헤아리는 거대 시장이었던 강경 지역의 풍부한 경제력과 임리정(臨履亭), 팔괘정(八卦亭), 죽림서원(竹林書院)으로 대표되는 흥륭(興隆)했던 학문적 분위기가 어우러져 1860년(철종 11) 강경포구에 새겨졌을 것으로 보인다. 글은 송심두(宋心斗)가 쓰고, 서항순(徐恒淳)·권황(權鎤)이 감동하였다.

[형태]

강경읍 금강변 옛 강경포구옥녀봉 정상 부근에 있는 천연 바위 절벽에 가로 131㎝, 세로 110㎝의 음각(陰刻) 평면을 만들고, 그 위에 총 190자의 글자를 새겨놓았다. 해조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땅은 바다와 더불어 떠 있으면서 기(氣)를 따라 오르내린다. 땅 위의 강물이 1에서 생겨나[生] 바다로 돌아가니, 이것이 썰물[汐]이 된다. 땅 아래의 바닷물이 6에서 이루어져[成] 강으로 들어가니 이것이 밀물[潮]이 된다. 밀물과 썰물은 십이상(十二相)의 상충(相冲)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묘(卯)와 서(西)에서 시작된다.

그것이 6의 수에 의하니 삼토(三兎)는 6×6=36이요, 삼룡(三龍)은 36에서 1×6을 감한 것이요, 삼사(三蛇)는 30에서 2×6을 감하여 18이 되니 이렇게 조수(潮水)가 감소한다. 일마(一馬)는 18에 9×6을 더한 것이요, 삼양(三羊)은 72에 8×6을 더한 것이며, 이원(二猿)은 120에 7×6을 더하니 이렇게 潮水가 증가한다. 묘(卯)·진(辰)·사(巳)에는 음(陰)이 양(陽)을 가리니 기(氣)가 축소되고, 오(午)·미(未)·신(申)에 양(陽)이 음(陰)을 가리니 기(氣)가 차오른다.

땅이 헐떡임이요, 바다가 숨을 쉼이다. 십오륙(十五六)에 나누이고, 십(十)과 일(一)에 이루어져 나아가고 물러나니 밀물이라, 썰물이라 이름 하네. 때를 따라 불어나고 줄어들며 호흡을 하여, 바다로 돌아가고 강으로 흘러들어 흐려지고 맑아지네. 경신년 여름 농와 송심두 쓰다, 감동 서항순·권황.”

논산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인 향토사학자 임채학의 「강경포구의 암각문」이라는 논문에 의하면, 암각 해조문은 첫째, 조석사상(潮汐思想) 측면에서 조석의 발생 원인에 대하여 그때까지 중국과 조선에 있었던 음양사상(陰陽思想)과 주역이론(周易理論)에 바탕으로 한 여러 이론들을 원용하면서 이의 답습에 그치지 않고 독창적으로 주역 이론을 한층 더 깊이 있게 적용하여 풀어나갔다.

둘째, 실용적 측면에서 조석 발생의 시각(時刻)과 함께 수심(水深)의 변화를 다루었다는 점이다. 이때까지 우리나라에 있었던 조석표(潮汐表)는 시각의 변화만을 다루면서 물발의 세기를 언급할 뿐이었는데, 암각문의 저자 송심두는 처음으로 만조시각(滿潮時刻)과 함께 물의 높이를 다루고, 또 그것을 계량화하여 표시하였다. 이 점에서 암각 해조문은 비록 소박하지만 현대 조석표의 두 요소인 시각과 높이를 모두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조석표라 할 수 있다.

셋째 강경 지역이 큰 포구를 바탕으로 하여 축적된 부(富)와 문화적 토양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실용적으로 조운활동(漕運活動)에 도움이 되는 조석표를 깊은 학문적 사상을 담은 내용으로 표현하여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걸어 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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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조문의 판독

[현황]

암각 해조문은 1996년 논산시 향토유적 제24호로 지정되었으나, 2008년 봄까지도 민가 뒤편 바위벽에 있어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웠다. 현재 강경읍에서 진행되고 있는 강경 옛 모습 되살리기 사업으로 민가가 철거되고 암각 해조문 앞으로 새로 길이 나고 주변이 정비되면서 접근하기 편해졌다. 또한 옥녀봉에 대한 정비와 조경 사업도 진행되고 있어 공사가 끝나면 지금보다 훨씬 편리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해조문을 답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조선 3대 시장이자 2대 포구로 명성을 날리던 강경포구 한편에 새겨진 암각 해조문은 시각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수심의 높낮이를 계량화하여 기록함으로써 현대적 조석표의 구성 요소를 구비한 획기적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해양사(海洋史)에도 큰 의미를 가지는 조석표라 할 수 있다.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 섬진강에 유서 깊은 포구들이 많이 있었지만 포구에 누구라도 쉽게 보고 고기잡이와 항해, 소금 생산 등 해양 관련 모든 부문에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조문을 새겨 놓은 곳은 강경포구가 유일하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