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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595
한자 -兄弟
영어의미역 Gombert Brothers
분야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조성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선교사|신부
출신지 프랑스
성별
생년 안토니오 공베르 1875년연표보기|줄리앙 공베르 1877년연표보기
몰년 안토니오 공베르 1950년 11월 11일연표보기|줄리앙 공베르 1950년 11월 12일연표보기

[정의]

일제강점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형제.

[개설]

형은 안토니오 공베르, 동생은 줄리앙 공베르이다. 줄리앙 공베르 신부는 1901년 금사리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고, 1923년부터 1942년까지 부창동성당의 2대 신부로 활약하였다. 안토니오 공베르 신부는 1900년 안성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인물이다.

[활동사항]

안토니오 공베르는 1875년 4월 25일에 태어났고, 줄리앙 공베르는 1877년 9월 7일 태어났다. 두 사람은 1900년 8월 1일 함께 사제 서품을 받고 그 해 10월 9일 함께 한국에 입국하였다. 1901년 금사리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줄리앙 공베르 신부는 충청남도 남서부 지방(부여, 논산, 청양, 예산, 홍성, 서산, 서천, 보령)의 사목을 담당하면서 1906년 4월에는 성당을 신축하고, 사제관과 사랑채를 완공한 뒤 1913년 9월 2일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가졌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조국 프랑스에서 동원 명령이 내려 1915년 11월 프랑스로 귀국하였다가 전쟁이 끝나자 한국으로 돌아와 사목을 계속하였다. 1923년 부창동성당의 2대 신부로 부임하여 1927년 구성당 건물 238.02㎡를 신축하였다. 또한 박창래 회장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가밀 원장에게 사절로 보내 수녀 파견을 요청해서, 1931년 10월 20일 김베놔 수녀 외 2명이 파견됨으로써 본당으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 후 일제 치하의 어려움 속에서도 본당의 교세는 꾸준히 확대되어 1945년 강경 본당이 분당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하던 당시 줄리앙 공베르 신부는 인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지도 신부로 수녀들의 영성을 지도하고 있던 중 1950년 7월 11일경 체포되어 납북되었으며, 11월 12일 옥사하였다.

안토니오 공베르 신부는 1900년 안성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여, 1909년 안법학교를 설립하고 자비로 운영하였다. 1912년에는 안법학교 여자부를 신설하고, 1922년 로마네스크식 벽돌 성당을 신축하였다. 1924년에는 수녀원을 신축하였으며, 1927년에는 교세의 확장으로 평택 본당을 분할, 독립시켰다.

1921년에는 천안 공소를 개설하였으며, 1943년에는 생제 신부와 함께 성가소비녀(현 서울성가소비녀회) 회칙을 작성하였다. 서울 혜화동 가르멜 수녀원의 지도 신부로 있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동생인 줄리앙 공베르 신부가 있던 인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으로 피신했다가 1950년 7월 11일경 동생과 함께 체포되어 납북되었으며, 11월 11일 옥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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