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522
한자 黃山-戰鬪
영어의미역 Battle of Hwangsanbeol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강종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투
발생(시작)연도/일시 660년 7월 9일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황산벌 지도보기
관련인물/단체 의자왕|계백

[정의]

논산시 연산면 일대의 황산벌에서 있었던 660년 백제군과 신라군 간의 전투.

[개설]

황산벌전투는 백제 의자왕이 즉위 이후 고구려와 연합하면서 신라를 공격해 642년(의자왕 2)부터 대야성(大耶城)을 비롯하여 남부 지역 40여 성을 함락시키자 이에 위기를 느낀 신라가 김춘추를 당에 보내 군사동맹을 체결함과 더불어 백제를 공격하면서 벌어진 양국의 운명이 걸린 일전이었다.

[역사적 배경]

7세기 중반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군사적 압력이 가중되자 당과의 외교관계를 강화했고, 당 역시 여러 차례의 고구려 원정에서 실패하자 백제를 선제공격하기로 하여 당과 신라 사이에 군사동맹이 체결되었다. 그리하여 660년 3월 당 고종은 소정방(蘇定方)을 시켜 13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산동(山東) 반도를 출발하여 백제를 공격하게 했다.

[목적]

당과 연합한 신라군이 백제를 멸하기 위해 전투를 수행하였다.

[경과]

660년 신라와 당은 군사동맹을 맺어 백제왕도의 남쪽에서 만나 사비도성을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백제에 대한 침략을 단행하였고, 백제 조정에서 나당연합군을 방어할 대책을 세우는 동안 김유신이 이끄는 5만의 신라군이 탄현을 넘어 7월 9일에 지금의 연산면 신암리 일원인 황산벌로 진군하였다. 이에 의자왕계백(階伯)에게 5천 명의 결사대를 주어 이를 막게 하였으며 계백은 가족을 죽인 뒤 비장한 각오로 출전하여 황산벌에 먼저 도착한 후 3곳에 진영을 설치하였다.

신라군은 군사를 세 갈래로 나누어 4번을 싸웠으나 모두 백제군에 패하였다. 이후 신라군은 반굴과 관창 등 나이 어린 화랑들의 희생을 통하여 사기를 진작시킨 후 백제군을 총공격하였다. 백제군 5천 결사대는 수적인 열세와 더불어 반굴·관창의 죽음으로 사기가 충전된 신라군의 총공격을 막아내지 못한 채 결국 황산벌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결과]

황산벌전투로 계백장군은 장렬히 전사하였으며 좌평(佐平) 충상(忠常)·상영(常永) 등 20여 명이 신라군의 포로가 되었다. 뒤이어 백제는 수도 사비성을 잃고 멸망하였다.

[의의와 평가]

패배하였지만 황산벌전투는 국가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고자 한 계백과 5천 결사대의 충의(忠義)정신이 서려 있는 전투였다는 점에서 백제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ㅎ* 사진 퍼가도 되나요?? 2013.01.30
a** 잘 이용하였습니다.
앞으론 더 좋은 자료 기대합니다^
2011.04.11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