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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460
한자 豐壤趙氏
영어의미역 Pungyang Jo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충청남도 논산시
집성촌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
입향시기/연도 1800년대(추정)
성씨시조 조맹(趙孟)
입향시조 조신(趙愼)

[정의]

조맹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연원]

풍양조씨는 고려조 개국공신 조맹(趙孟)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조맹은 후삼국시대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참여하여 개국공신으로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이르렀다. 풍양조씨들은 시조 조맹의 출생지이자 세거지였던 풍양(豐壤, 현 경기도 남양주시)을 본향으로 두었다. 풍양은 조맹은 이곳에서 태어나 노년까지 살다 죽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묘소 또한 풍양 적동(赤城洞, 현 남양주시 진건면 송릉2리)에 남아 있다.

풍양조씨는 이후 회양공파와 남원공파로 나누어지고, 회양공파에서 다시 한평군파가 분파한다. 한평군파는 조선 헌종 시기 세도정치를 폈던 집안이다. 풍양조씨는 고려시대부터 명문가로 자리 잡았으며, 조선시대 때는 숙종조 이후 문중적 세력 기반을 탄탄히 하여 대표적인 양반가로 자리매김하였다. 풍양조씨는 상신 7명, 대제학 3명, 공신 7명, 장신 7명 등 문과 급제자 181인을 배출하였으며 종묘에 배향된 인물만도 5명이나 되는 명실상부한 조선의 문벌 명문가다.

풍양조씨의 대표적인 인물로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로 효종 때 좌의정에 올랐던 조익(趙翼)이 있다. 또한 조상강의 증손자 조만영(趙萬永)헌종의 외할아버지로 이때부터 풍양조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

[입향경위]

논산의 풍양조씨는 회양공파의 후손들로 7세손인 조신(趙愼)의 자손들이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 지역으로 옮겨와 터를 잡고 살게 되면서 논산에 이거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부여에 옮겨온 풍양조씨들은 세력 확장 과정 중 인근 지역이었던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에 1800년대 동족마을을 형성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1800년대 기록된 사마방목 급제자 명단에 노성현에 살고 있는 풍양조씨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풍양조씨개척리에 집성촌을 일구며 발전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조환구(趙煥九) 일가가 번창하며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1920년 일제에 의해 편찬된 『조선의 성(朝鮮の姓)』이라는 책에서도 성동면 개척리에 약 38가구가 살며 동족마을을 이루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황]

1995년을 기준으로 풍양조씨논산읍에 109가구를 비롯하여 강경읍에 73가구, 연무읍에 47가구, 성동면에 41가구, 노성면에 20가구 등 총 383가구가 정착하여 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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