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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452
한자 坡平尹氏
영어의미역 Papyeong Yun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충청남도 논산시
집성촌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입향시기/연도 1540~1550년대
성씨시조 윤신달(尹莘達)
입향시조 윤돈(尹暾)

[정의]

윤신달을 시조로 하고 윤돈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연원]

파평윤씨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워 고려 개국공신에 책록된 윤신달(尹莘達)을 시조로 하는 성씨로 고려시대 유명한 문벌귀족 중의 하나였다. 윤신달과 관련해서는 파평현 용연(龍淵)에 있던 옥함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부이므로 그전의 다른 이야기나 모습은 알 수 없으며, 그의 후손들이 파평현을 근거지로 삼아 토착화하여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파평윤씨는 고려조 이후 계속적으로 가문의 번성을 이루었으며, 조선시대를 통틀어 문과 급제자는 418명, 정승은 11명이나 배출한 큰 성씨로 성장하였다.

문헌을 통해 세거지와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 22세손 윤귀성(尹貴城) 이후 청양과 홍성 등지에 옮겨와 살았으며, 8세손 윤상은(尹尙殷) 이래로 논산과 가까웠던 부여, 홍산 등지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논산시 일대에는 윤돈 이후 광석면노성면에 많이 살았으며 크게 성장하였다. 또한 1930년경에는 충청남도 공주군 탄천면, 연기군 서면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입향경위]

파평윤씨는 약 1500년경 승지공 윤돈(尹暾)의 장인인 유연(柳淵)이 살고 있던 이산현 득윤면 당후촌으로 이거하면서 노성 지역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통정대부 첨정이었던 유연은 일찍이 이산현 득윤면 당후촌에 터전을 잡고 부유하게 살며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아들 유서봉(柳瑞鳳)은 일찍 세상을 떠나고 두 명의 딸만이 남게 되었다. 그중 첫째 딸은 한여헌에게 출가하여 그 후손들이 연산면 백석리 텃골에서 누대를 살게 되고, 둘째 딸은 윤돈에게 출가하여 득윤면 당후촌에 살게 된다.

이후 윤돈의 아들 윤창세에게 외가의 모든 전답이 분재되어, 윤창세가 이관 받은 전답으로 외손봉사를 하게 되었으며, 현재까지 그러한 전통이 남아 있다. 이렇게 이거한 파평윤씨들은 윤창세노성면 병사리 비봉산에 터를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노성면에 세거하게 되었고 윤창세의 아들들이 자라 파평윤씨 노종5방파로 나뉘게 되었다. 이후 파평윤씨들은 노성면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시켜 나갔고 특히 ‘충청5현’으로 대표되는 윤선거를 비롯하여 소론의 영수로 추대되는 명재 윤증 등 많은 명현을 배출하게 되었다.

[현황]

1995년 기준 파평윤씨논산읍에 215가구를 비롯하여 연무읍에 145가구, 노성면에 112가구, 광석면에 85가구, 성동면에 77가구 등 논산군에 총 968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관련유적]

논산의 대표 성씨였던 만큼 논산시 일대에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어 그들의 세력을 짐작하게 하는데, 그중 특히 노성면 일대에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노성면 병사리에 남아 있는 병사재실과 파평윤씨 묘역, 파평윤씨 종학당, 파평윤씨 정수루 등이다. 또한 노성면 장구리에는 윤황의 고택과 그의 묘소, 광석면 오강리에는 노강서원, 노성면 교촌리 마을 입구에는 윤선거 처 공주이씨 정려 등이 있고, 소론의 영수 윤증의 고택과 유품들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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