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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내린 왕밭」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217
한자 王-王-
영어의미역 The Field Conferred by the King
이칭/별칭 「왕이 내린 왕전」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왕전리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박종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지명유래담|승전담
주요 등장인물 왕건|무당
관련지명 황산벌 지도보기 |왕밭지도보기|왕전리지도보기
모티프 유형 무당의 해몽|승전한 왕건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서 왕전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왕전리 또는 왕밭이라고 하는 마을이 있다. 옛날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군과 전투를 하기 위하여 황산벌에 진을 치고 있었다. 연일 계속된 싸움으로 지칠 대로 지친 왕건은 진영을 둘러보고 난 후 잠시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게 되었다. 꿈에서 그는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지고 큰 솥을 뒤집어 쓴 채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바닷속에서 닭이 울고 수만 채의 집에서 방망이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는 것이었다. 왕건이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꿈이었다. 왕건은 불안한 생각이 들어 인근에 있는 무당을 찾아가 해몽을 청하였다.

꿈 이야기를 들은 무당은 “서까래 셋을 짊어진 것은 임금 왕(王) 자로 왕이 된다는 것이요, 큰 솥을 쓰고 바다에 들어간 것은 용좌에 앉는다는 뜻입니다. 닭의 울음소리는 고고함으로써 높은 것이요, 수만 채의 집에서 나는 방망이 소리는 등극이 가까워졌다는 뜻이지오.”라고 해몽을 해 주었다. 새로운 힘이 솟은 왕건은 진영으로 돌아가서 휘하 장병들에게 진격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하여 왕건은 후백제군을 물리치고 후삼국 통일의 위업을 이루게 되었다.

왕건은 승전한 데 있어서 무당의 공이 크다고 생각하여 무당에게 상으로 전답을 주기로 하였다. 마침 밤이었는데 신하가 “밭을 어느 정도 떼어 주어야 하는지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왕건이 “이 등불이 보이는 곳을 전부 무당에게 주어라.”라고 말하였다. 그곳이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있는 왕전리 지역이다. 이처럼 왕이 내린 전답인 데서 유래하여 이 지역을 왕전(王田)이라 하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왕이 내린 왕밭」의 주요 모티프는 ‘무당의 해몽’과 ‘승전한 왕건’이다. 무당의 해몽에 힘입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왕건은 등불이 보이는 땅 모두를 무당에게 상으로 줬는데, 이곳을 왕이 내린 전답이라 하여 왕전(王田) 또는 왕밭이라 불렀다는 지명유래담이자 승전담이다.

「왕이 내린 왕밭」에서는 해몽이 주요 모티프로 작용하고 있다. 꿈풀이는 신화나 전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것은 꿈 그 자체를 천상 세계의 계시로 받아들이기 때문으로, 왕건의 꿈 또한 하나하나가 개국의 전조로 해석되고 있다. 그리고 그 전조가 천상 세계로부터 비롯되는 것으로 제시되어 왕건고려 창건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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