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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한 논」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179
한자 吐-
영어의미역 Rice Fields Throwing Up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박종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인물담|지명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명재|거신
관련지명 유봉마을지도보기|토한 논지도보기
모티프 유형 명재의 밥상|거신의 토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서 명재 윤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명재 윤증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이다.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峯)이며, 윤증이 이름이다. 예론에 정통한 학자로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저서로 『명재유고(明齋遺稿)』 등이 있다.

[채록/수집상황]

2007년 2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마을에서 전승희(여, 73)가 구연한 것을 채록하였다.

[내용]

명재 윤증은 벼슬을 사양하고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마을에 머물렀다. 임금이 거듭 벼슬을 내려 돌아올 것을 권유하였으나 끝내 듣지 않았다. 어느 날 나라의 벼슬아치 거신(巨臣)이 명재를 찾아왔다.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전후의 사는 이야기를 하였다. 거신이 찾아온 이유를 말하며 “선생님, 여기에서 계시지 말고 서울로 올라가시지요.”고 권하였으나 명재는 이를 거절하였다.

마침 때가 되어 명재가 식사를 가져오도록 하였다. 부인이 식사를 내오는데 상 위에 조죽만 달랑 있었다. 쌀이 떨어져 조로 죽을 끓인 것이다. 명재가 “준비한 것은 이것밖에 없소. 못 먹는 것은 아니니까 드셔 보시우.”라고 말하였다. 거신은 명재 앞에서 못 먹겠다는 말을 못하고 힘겹게 조죽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거신이 명재와 인사를 나누고 한양으로 향하였다.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하여 속이 불편하였다. 그래서 논둑에 앉아 먹은 조죽을 토하였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부터 거신이 토를 한 논의 이름을 토한 논이라 불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토한 논」의 주요 모티프는 ‘명재의 밥상’과 ‘거신의 토’이다. 빈곤한 생활을 하면서도 벼슬을 거절한 명재에 대한 인물담이자 명재가 대접한 조죽을 먹고 거신이 토를 한 논을 토한 논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토한 논」은 외형상 지명유래담이지만 내면에는 명재의 빈곤했던 생활을 그리고 있다.

명재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살면서 주식으로 조를 먹었다고 한다. 명재의 명성이나 여건에 비추어 이와 같은 생활은 명재의 청렴함을 돋보이게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거친 조밥으로 끼니를 이었던 명재의 일상이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한 예로 명재의 후손들은 혼인 초례상에 조밥을 올려놓는데 이 전통 또한 명재의 청렴한 삶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 인터뷰(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마을 주민 전승희, 여, 73세, 200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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