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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곤리 아기장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156
한자 牛昆里-將帥
영어의미역 Strong Baby in Ugon-ri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우곤리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박종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아기장수담|지명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농부 부부|산신령|아기|백마
관련지명 우곤리|아기장수 무덤지도보기
모티프 유형 기자기도(祈子祈禱)|자식살해|천마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우곤리에서 아기장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우곤리 아기장수」는 1991년 논산문화원에서 간행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백제 말엽 지금의 우곤리 마을에 농부 부부가 살고 있었다. 부부는 열심히 일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림을 꾸려갔으나 한 가지 슬하에 자식이 없는 것을 항상 아쉬워하였다. “아기 하나만 있으면 부러울 게 없을 텐데.” 하면서 부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뒤로 부인은 매일 같이 청수 한 그릇을 떠다 놓고 산신령님께 빌었다. “신령님, 신령님, 우리에게 아들 하나만 점지해 주세요.” 하며 부인은 정성을 다하여 빌었다. 남편도 역시 아내를 따라 열심히 빌었다.

농부 내외가 신령님께 정성을 다하여 빌기 시작한 지 1년이 되던 날, 드디어 농부의 아내에게 태기가 있었다. 부부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열 달 뒤에 귀여운 아들을 낳게 되자 부부는 서로를 얼싸안고 기뻐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기가 울기만 하는 것이었다. 부부는 온갖 짓을 다하여 아기를 달래려고 하였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아기는 더 크게 울어댔다. 그러다가도 부부가 밖으로 나오면 울음을 딱 그치곤 하였다. 그래서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부부는 아예 밖으로 나와 버렸다.

어느 날 농부 부부는 밖으로 나가는 체하고 문틈으로 아기를 지켜보았다. 아기가 노는 것을 지켜보던 부부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하였다. 아기는 시렁에 있는 콩과 팥으로 수천 명의 군사를 만들어 방 안에 세워 놓았다. 그리고 아기 자신은 장수가 되어 붉은 갑옷을 입고 백마를 탄 채 군사들을 호령하는 것이었다. 군사들은 아기 장군의 명령에 따라 절도 있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기는 정말 늠름한 장수가 되어 군사들에게 전술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부부는 한참 동안 방 안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헛기침을 크게 하고 문을 열어 제치자 아기는 여느 때와 같이 엉엉 울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요란하던 군사들은 온 데 간 데가 없었다. “아무래도 저놈이 보통 놈은 아닌 것 같아.” 농부는 한편으로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저놈을 그냥 두었다가는 우리 집에 화가 미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고민하던 농부 부부는 결국 아기를 없애기로 하였다.

굳은 결심을 한 부부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 엉엉 울어대고 있는 아기의 배에다 다듬잇돌을 올려놓고 양쪽에서 힘껏 눌렀다. 아기는 눈물을 흘리면서 무엇인가 하소연하려 하다가 숨을 거두었다. 그날 저녁 부부가 아들을 산에 묻고 돌아오는데 어디선가 말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백마 한 필이 나타나서 아기의 무덤을 빙빙 돌며 우는 것이었다. 백마는 밤새도록 무덤을 빙빙 돌면서 애절하게 울어대다가 이튿날 새벽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사람들은 아기가 묻혔다고 전해 오는 무덤을 지금도 아기장수 무덤이라고 부르고 있다.

[모티프 분석]

논산시에는 「우곤리 아기장수」와 같은 다수의 아기장수 전설이 전승되고 있다. 논산시 부적면 아호리「아호리의 아기장수와 말무덤」이나 「용산리 아기장수」가 같은 계열의 이야기이다. 봉건사회에서 영웅의 출현에는 기존의 질서나 체제를 혁신하고 새로운 국가를 창업한다는 관념이 존재하였다. 이 때문에 영웅의 출현은 곧 반역과 연계되었고, 「우곤리 아기장수」 이야기처럼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는 안타까운 행위가 나타나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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