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954
한자 李敏進旌閭
영어의미역 Jeongnyeo for Yi Minjin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3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춘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려
양식 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1834년연표보기
정면칸수 1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3리 지도보기
소유자 가평이씨 백봉공파 종중
문화재 지정번호 논산시 향토유적 제19호
문화재 지정일 1996년 12월 30일연표보기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3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이민진의 정려.

[개설]

이민진의 본관은 가평, 자는 자선, 호는 백봉이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 조정이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자, 의병 3천 명을 모아 연산현감 김홍익과 함께 전장에 나가 싸웠다. 당시 29세의 이민진은 출전할 때 죽기를 맹세하고 검은 행전과 버선을 신고 나갔다. 그러나 광주 험천 지방에 이르러 적을 만나 맹렬히 싸우다 전사하고 말았다. 이민진이 죽은 뒤 노비 영상과 귀상이 전쟁터에서 검은 행전을 보고 이민진의 시신을 찾아내 돌아왔다. 이러한 이민진의 충절이 알려져 1834년(순조 34)에 정려를 받았다.

[위치]

연산면소재지인 청동2리에 있는 연산역에서 철도 남쪽으로 450m쯤 가면 국도 1호선을 잇는 도로가 있다. 이 도로에서 남쪽으로 난 샛길로 300m 정도 들어가면 청동3리 청동골에 이르게 된다. 이 마을에 충신 이민진의 정려가 자리하고 있다.

[형태]

정려는 정·측면 각 1칸으로 8각의 높은 주초석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팔작지붕을 올렸으며, 네 면은 홍살로 두르고 하방을 시멘트로 막았다.

[현황]

정려각 주변에 철창담을 둘러 정려를 보호하고 있으며, 바닥을 시멘트로 깨끗이 정비하였다. 정려 앞에는 노비 영상과 귀상의 충노비가 세워져 있다. 1996년 12월 30일에 논산시 향토유적 제19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이민진충곡서원 배향 인물로 이 정려를 통해 인물의 성격에 대해 알 수 있으며, 정려를 받게 된 배경을 통하여 가평이씨의 사족 활동도 파악할 수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