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950
한자 李公兼夫婦孝烈旌閭
영어의미역 Jeongnyeo for Yi Gonggyeom and His Wif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춘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려
양식 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1775년연표보기
정면칸수 1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 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백석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공겸 부부의 정려.

[개설]

이공겸은 왕실의 종친으로 옥계도정(玉溪都正) 이현동(李賢童)의 증손이다. 이공겸과 그의 아내 민씨는 양촌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그러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공겸 내외는 부친을 등에 업고 공주를 향하여 피난하기 시작했다. 연산 백석리에 이르러 잠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왜병 무리와 마주치게 되었다.

이공겸의 아버지는 자식 내외라도 피하기를 바랐으나, 아버지를 두고 떠날 수 없던 이공겸은 칼을 휘두르는 왜병에게 아버지 대신 자기 목을 치라고 소리를 쳤다. 그런데 이공겸의 부인 민씨 또한 남편의 앞을 막고 차라리 자신을 죽이라고 하여 끝내 부부가 죽게 되니, 살아난 아버지가 마을로 와서 사실을 알림으로써 행적이 드러나게 되었다.

[위치]

연산면소재지에서 공주로 통하는 포장도로를 따라 약 6.5㎞쯤 가면 백석리에 이르는데 이공겸 부부 효열 정려는 도로 오른쪽에 있고, 그 서쪽에 김두종 불망비남덕원 불망비가 자리하고 있다.

[변천]

1775년(영조 51)에 효열 정려가 내렸는데, 이들 부부의 효열행은 『동국삼강행실도』에 그림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효열각의 중수는 1986년에도 이루어졌다.

[형태]

이공겸 부부 효열 정려는 정면·측면이 각각 1칸으로, 8각형의 주초석을 놓고 둥근 기둥을 세운 뒤 곧바로 도리로 연결하고 팔작지붕을 올렸다. 4면은 홍살로 시설하였으며, 처마는 겹처마로 꾸몄다. 정려 안에는 명정 현판이 있고, 외부의 정면과 측면에 ‘효열각중수표성록중수기 1986년(孝烈閣重修表誠錄重修記 1986年)’, ‘효열각출연성금방명록(孝烈閣出捐誠金芳名錄)’ 현판이 걸려 있다. 내부의 명정 현판에는 ‘효자충의위이공겸지문처열녀여흥민씨지려(孝子忠義衛李公兼之門妻烈女驪興閔氏之閭)’라고 음각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전쟁 중에 삼강의 행실이 뛰어난 효자·충신·열녀는 평소보다 많았다. 이공겸 부부 효열 정려도 임진왜란 당시의 효열행으로 받은 것으로, 아버지를 살리고자 한 이공겸의 효행과 남편을 살리려 했던 민씨의 열행을 잘 보여 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