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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941
한자 -妻大邱徐氏烈女門
영어의미역 Jeongryeo for Virtuous Woman of Daegu Seo Clan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봉동1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춘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열녀문
건립시기/일시 1954년연표보기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봉동1리 뒷산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봉동1리에 있는 김상훈대구서씨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열녀문.

[개설]

김상훈의 처 서씨는 어려서부터 천성이 유순하고 효성스러워 동네에서 칭찬이 자자하였다. 18세에 연무읍 봉동리김상훈에게 출가하였는데, 시집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백방으로 약을 써보아도 소용이 없자 서씨는 자기 손가락을 잘라 남편 입 속에 피를 흘려 넣어 주었고, 남편은 그 후 닷새를 더 살다가 죽었다. 이 때 서씨의 나이 19세에 불과하였으나 남편의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유복자를 훌륭하게 키워내니 그의 뜻을 후세에 전하고자 열녀문을 세웠다.

[위치]

연무읍소재지에서 서쪽으로 난 국도 3호선을 따라 5㎞ 거리에 남쪽으로 향하는 국도 5호선이 있는데, 이 길로 1.5㎞를 간 후 다시 서남쪽으로 난 소로로 2.5㎞를 가면 외송마을이 있다. 마을의 동쪽 솔밭 안에 대구서씨 열녀문이 위치한다.

[현황]

김상훈대구서씨의 열녀비는 대문 형식으로 만든 석재 비각 내부에 세워져 있다. 열녀문의 비각 전면에는 ‘열녀대구서씨지려(烈女大邱徐氏之閭)’라 쓰여 있고, 주변은 낮은 시멘트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에 건립된 정려들을 살펴보면 남편이 죽으면 따라서 자결을 하는 경우에 정문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구서씨의 경우 살아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유복자를 잘 키워내어 그 뜻을 기리고자 세운 것이다. 대구서씨의 열녀문은 보기 드물게 현대에 건립된 열녀문으로, 조선시대와 비교하여 변화한 효열 사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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