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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247
한자 金弘翼
영어음역 Gim Hongik
이칭/별칭 익지(翼之),묵재(默齋),충민(忠愍)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고수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581년연표보기
몰년 1636년연표보기
본관 경주
대표관직 의금부도사|공조좌랑

[정의]

조선 중기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 자는 익지(翼之), 호는 묵재(默齋). 아버지는 찰방 김적이며, 어머니는 화순최씨(和順崔氏)로 좌윤 최원지(崔遠之)의 딸이다.

[활동사항]

1614년(광해군 6) 사마시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갔으며, 많은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628년(인조 6)에는 의금부도사가 되었으며, 1630년(인조 8)은 장악원직장이 되었다. 1631년(인조 9) 감찰을 지내고, 1632년(인조 10) 공조좌랑을 거쳐 연산현감이 되었다. 성품이 강직하고 청렴결백하였으며, 정화에 힘쓰고 군을 보살핌에 최선을 다하여 군이 태평하였다.

1636년(인조 14)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관찰사 정세규(鄭世䂓)가 군병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군기차사원으로 의병 2,400여명을 모집하였다. 의병을 인솔하여 수원 산성에 이르렀으나 감찰사와 논의하여 다시 남한산성으로 가던 중 쌍령(雙嶺)에서 적병과 마주쳐 분전하였지만, 적이 쏜 화살에 맞아 순절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묵재실기(默齋實紀)』 3권 1책이 전해지고 있다.

[상훈과 추모]

김홍익의 사후에 조정에서 좌승지와 이조판서를 증직하였으며, 1741년(영조 17)에는 정려를 하사하였다. 1794년(정조 18)에는 충민(忠愍)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또한 논산시 부적면 충곡리에 있는 충곡서원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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