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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205
한자 金槃
영어음역 Gim Ban
이칭/별칭 사일(士逸),허주(虛舟)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고수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580년연표보기
몰년 1640년연표보기
본관 광산
대표관직 이조참판

[정의]

조선 후기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일(士逸), 호는 허주자(虛舟子). 좌의정(左議政) 김국광(金國光)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김계휘(金繼輝)이고, 아버지는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다. 어머니는 부사 조대건(趙大乾)의 딸로서 창녕조씨(昌寧趙氏), 형은 김집(金集)이다. 아내는 둘인데 첫째 부인은 안동김씨(安東金氏)로서 1남 3녀를 낳았으며 둘째 부인은 연안서씨(延安徐氏)로서 5남 2녀를 낳았다. 여섯 아들 중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을 둘이나 배출하였다.

[활동사항]

김반송익필(宋翼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사마시에 급제하고 태학에 들어갔다. 1613년(광해군 5) 계축무옥(癸丑誣獄)이 일어나자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충청도 논산 지역에 낙향하여 10여 년간 초야에 은거하며 학문을 탐구하였다. 이괄(李适)의 난 때 인조를 공주로 호종하였다. 공주행재(公主行在)에서 실시한 정시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호종의 공으로 성균관전적이 되었다.

그 뒤 형조좌랑, 예조좌랑, 홍문관수찬, 부교리를 거쳐, 1625년 시강원문학, 사간원헌납 등을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정묘호란 때 인조를 강화로 호종하고 돌아와 사인겸보덕, 응교, 전한 등을 역임하였다. 또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호종하였고 화의가 이루어지자 그 공으로 가선대부에 올랐다. 글씨를 잘 써서 명성이 높았다.

[묘소]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전민동에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정민역(貞民驛)이 설치되었던 곳으로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땅에 광산김씨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광산김씨 묘역에는 김반과 그의 부인의 묘 2기와 장자 김익렬(金益烈), 셋째 아들 김익겸(金益兼), 손자 김만준(金萬埈)의 등의 묘와 김익겸의 충신정려, 손자 김만중(金萬重)의 효자정려, 연산서씨와 연일정씨(延日鄭氏)의 열녀정려가 있다.

[상훈과 추모]

사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2.08.25 오류 수정 [가계]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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