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148
한자 尹文擧神道碑
영어의미역 Spirit Path of Yun Mungeo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 상정마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조성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신도비
건립시기/일시 일제강점기
관련인물 윤문거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 상정마을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 상정마을에 있는 윤문거의 신도비.

[개설]

윤문거의 본관은 파평으로, 자는 여망이고 호는 석호이다. 대사간 윤황의 아들로 태어나 1633년(인조 11)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설서, 낭관, 정언 부수찬, 부교리 등을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부친을 따라 남한산성에 들어가 임금을 호종하였다.

1639년 부친상을 당하여 3년간 상을 마친 후에 효종의 부름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652년(효종 3) 동래부사로 나갔다가 교역 문제로 파직당한 후 여러 번 승지, 참의, 부제학, 대사간, 대사성 등에 임명되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만년에 주자학을 연구하며 지조를 지켰다. 사후에 좌찬성에 추증되고 충경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건립경위]

신도비문은 윤문거 사후에 우암 송시열의 찬으로 받았으나, 신도비는 사정에 의하여 200여 년이 지난 1912년에야 세워졌다.

[위치]

서논산 IC 입구에서 왼쪽으로 빠져나와 북쪽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면 갈산리가 나오는데, 윤문거 신도비는 마을 뒤편 윤문거 묘역 안에 세워져 있다.

[형태]

윤문거 신도비는 건립한 지 오래되지 않아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농대석 위에 오석의 비신을 세우고 지붕돌[가첨석]을 얹은 형태이다. 비신의 이마 부분에 전액을 새겼고 앞뒷면에 각자되어 있으며, 송시열이 비문을 짓고 윤문거의 형인 윤순거의 필적을 집자하여 새겨 놓았다.

[금석문]

신도비문 일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파평 윤공의 휘는 문거요 자는 여망이다. 팔송공의 아들이고 문간공 성 선생의 외손이며 동토 윤순거의 아우이고 미촌 윤선거의 형으로 세상에서 석호선생이라고 부른다. 공은 자품이 온후하여 자신을 겸비하였으므로 화려하게 내세움을 싫어하여 속으로 간직만 하고 겉으로는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속에 쌓인 것이 충실하고 성대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겉으로 나타났다. 그가 생존했을 때에는 사람마다 친애하고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그가 별세한 후에는 슬퍼하고 사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지금 그의 아들 윤박이 상복 차람의 야윈 모습으로 찾아와 묘문 지어주기를 청하였다. 아! 동토 미촌이 살아 있다면 반드시 정 숙자 이(頤) 선생이 명도 정호의 묘문을 서술한 것처럼 하였을 것이다.

지금 나는 늙고 병들어 거의 죽게 되었으니 무슨 필력으로 공의 덕에 대하여 만분의 일이나마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 세대를 회고해 보건대 공을 자세히 알고 공에게 깊이 탄복한 사람은 의당 나만한 이가 없을 것이니 어찌 차마 끝까지 사양할 수 있겠는가.”

[의의와 평가]

우암 송시열이 찬한 신도비는 윤문거의 학문과 의리 사상이 잘 나타난 비문으로, 조선 중기의 사림 활동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