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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0875
한자 歷史
영어의미역 History
분야 역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집필자 이해준

[정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의 변천 과정과 과거의 사실.

[개설]

현재까지 조사·발굴된 유적이나 유물에 의하면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의 인간 사회의 형성과 전개는 청동기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를 전후하여 현재까지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의 역사는 선사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현대로 나눌 수 있다.

[선사시대]

논산 지역은 자연 지리적으로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적 특성을 갖고 있어 아주 이른 시기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선사유적에 관한 현재까지의 조사·보고에 의하면 논산 지역에서 발견된 구석기 및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아직 없다. 그러나 인접 지역인 공주시 석장리의 금강변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이 조사·보고된 바 있어 논산 지역을 관통하는 금강 주변에서도 관련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논산 지역의 청동기시대 유적으로는 연무읍 마전리 유적, 성동면 정지리 유적, 원북리 유적이 있으며 이들 유적을 통해 당시의 집자리와 무덤군 등을 확인 할 수 있다. 특히 원북리 유적은 당시 사람들이 생활과 장례에 대한 공간을 의도적으로 분리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원사시대로 불리는 초기 철기시대의 유적으로는 정지리 유적과 원북리 유적이 있다. 현재 한반도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초기 철기시대의 추가적인 조사·발굴과 더불어 논산 지역에서도 마전리성동면 정지리에서 원삼국시대의 유적이 조사·발굴된 바가 있다. 이들 유적에서는 집자리와 저장용 구덩이 등의 확인과 함께 회색 연질·경질의 타날문 토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삼국시대]

삼국시대에 논산 지역은 백제가 관할하였으며 3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3개의 행정구역이 편성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지방 통치 체제가 새롭게 정비되는 사비시기로 판단된다. 백제가 강성하던 시기에 논산은 남부의 전라도 지역으로 진출하는데 있어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논산이 백제의 직접적인 통치 체제로 편입된 시기는 백제가 도읍을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한 475년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정지리원북리 유적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웅진도읍기 논산의 구체적인 역사지리를 확인할 만한 자료는 전해지지 않는다.

논산이 백제사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사비 천도 이후부터이다. 사비 천도로 인해 논산 지역은 백제가 신라로 진출하거나 신라의 백제 진출을 방어하는 요충지가 되었다. 따라서 논산 지역에는 백제의 5방성 가운데 하나인 동방성과 함께 왕도의 동쪽 방비를 위한 많은 산성이 축조되었으며, 이들 산성은 사비 천도 이후 논산의 지리적 중요성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백제사에서 논산이 특히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백제 역사상 최대의 격전이자 국운을 걸었던 황산벌 전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황산벌 전투는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대항하여 벌인 최초의 전투이자 도성 사비를 방어하기 위한 마지막 전선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전투였다. 결국 이 전투의 패배로 인해 백제는 멸망의 운명을 맞게 되었다. 백제의 멸망 이후 논산 지역에서는 백제부흥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663년(문무왕 3)에 신라군의 논산 덕안성 공격으로 1,070여 명에 이르는 백제부흥군이 참살되면서 백제부흥의 결정적 장해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통일신라~고려시대]

삼국시대 백제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이었던 논산 지역은 신라의 통일 후 경덕왕 16년에 황산군(黃山郡)으로 개명되었다. 황산군은 신라의 9주 중 웅주(熊州)에 속해 있었으며 하위 행정구역으로 진령현(鎭嶺縣, 현 대전광역시 진잠)과 진동현(鎭同縣, 현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을 관할하고 있었다. 그리고 후삼국시대에 이르러 논산 지역은 견훤후백제가 관할하였다.

고려 건국 후 논산 지역은 연산군(連山郡)으로 개명되었으며 이때부터 고려 왕실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지역이 되었다. 그 구체적인 예로는 이 지역에 개태사가 936년(태조 19) 공사가 시작되어 4년만인 940년(태조 23)에 개태사가 완공되자 완공되었다는 것이다. 태조 왕건이 직접 발원문을 지었다.

또한 고려 광종이 호족을 숙청하는 과정 속에서 죽음을 당하는 자가 줄을 잇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민심을 무마하고 고려 조정의 권위를 보이기 위해 은진에 관촉사(灌燭寺)을 창건함과 동시에 높이 18.12m의 석조미륵불을 조성케 하였다. 뿐만 아니라 고려 말에는 공민왕에 의해 개태사태조의 영정을 모시는 진전이 되었다.

[조선시대]

1. 조선 전기

조선 건국 직후 새로운 도읍 후보지로 고려시대의 남경이었던 한양과 논산의 계룡산 지역이 거론되었다. 권중화의 주장으로 논산 지역을 새로운 도읍지로 건설하기 위한 실제 작업이 1년 정도 진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륜의 반대로 중지됨과 동시에 조선의 새로운 도읍지는 한양으로 결정되었다. 조선은 건국 초에 고려의 지방제도를 답습하였으나 1413년(태종 13)에 이르러 고려의 5도(五道)·양계(兩界)체제를 8도체제로 개편하는 작업을 시작하여 성종 조에 완성하였다. 그 결과 논산 지역은 충청도관찰사의 관할 하에 은진현, 연산현, 니산(노성)현으로 재편되었다.

한편 임진왜란 당시 논산 지역은 왜군의 침략으로 피해를 많이 입은 지역이었다. 1차 침입 때인 1592년의 경우 논산 지역은 왜군의 북상로에서 벗어나 있었던 관계로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 그러나 2차 침입에는 충청도 대부분의 지역과 더불어 논산 지역도 왜군과의 주요 격전지로 되면서 피해가 막심하였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1596년 휴전협상이 결렬되자 왜군은 이듬해인 1597년(선조 30) 정월에 재침을 감행하여 남해·사천·고성·하동·광양·구례·남원을 차례로 점령한 후 전주에 집결하였다. 이중 좌군은 남쪽으로, 모리(毛利秀元)·가토(加藤淸正)·구로다(黑田長政) 등으로 편성된 우군은 충청도로 북진했다. 이에 같은 해 9월초 충청방어사 박명현 부대가 논산 지역의 여산·은진 등지에서 왜군을 맞아 종일 접전하면서 많은 적을 사살하였으나 결국 중과부적으로 후퇴하였다. 이 과정에서 논산 지역도 많은 피해를 입게 되었다.

2. 조선 중·후기

왜란과 호란을 거치면서 조선에서는 정치·사회·경제적으로 큰 혼란이 발생하게 되었고 전란이 끝난 후 사회질서를 재건하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들이 전개되었으며 이는 논산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각 지방의 사족들은 사족 지배체제의 재건을 위해 향교를 중건하거나 서원·사우·서당·정자를 건립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논산 지역의 경우 노성향교가 현 위치인 노성면 교촌리로 이건 되었으며 연산향교은진향교는 대대적인 중수가 이루어졌다.

전란 이후의 호서 사족들의 학맥은 대체로 논산 출신의  김장생과 그의 아들  김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김장생은 후학을 가르쳐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는데, 그의 대표적인 제자들로 송시열· 송준길·이유태· 권시 등이 있다. 기호사림에 종속되어 별다른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던 호서사림이 김장생의 출현으로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근대~현대]

근대의 논산 지역, 특히 강경금강논산천이 합류하는 가항(可航)포구로서 용안평야, 논산평야 등 국내 굴지의 미곡생산지를 배후에 두고 조선 후기 이래 전국적인 상업중심지로 성장하였으며 한때 전국 3대시장의 하나로 꼽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군산의 개항에 이은 철도의 개통으로 강경의 시장권도 점차 위축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이 시기 논산 지역에서는 1894년 동학농민운동 제2차 봉기와 더불어 논산대회가 개최되었으며, 1899년에는 향반 토호세력과 천주교회가 대립한 대표적 사례인 강경포 교안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9년 3월 논산 지역에서는 3·1운동에 적극 부응하는 독립만세운동이 논산면을 필두로 하여 주변 지역으로 활발하게 확산·전개되기도 하였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 의한 전국적인 행정구역의 개편과 더불어 논산 지역에서도 군·면 통폐합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어졌다.

우선 1914년의 군·면 통폐합으로 종전의 은진군, 연산군, 노성군과 석성군의 일부가 통합되어 15개면 190개 동리의 논산군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1931년의 읍·면제의 시행에 따라 강경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1읍 14면이 되었으며, 1938년에는 논산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2읍 13면이 되었다.

해방 후 논산군은 1963년에 전라북도 익산군의 황화면을 편입함과 동시에 구자곡면의 일부와 통합하여 연무읍으로 승격시킴으로써 3읍 12면이 되었다. 그리고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었으며, 2003년에는 두마면이 계룡시로 승격·분리됨으로써, 이후부터 논산시는 2읍 11면 2동으로 편성된 행정구역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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