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남양전씨 종중 문서 일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0405
한자 南陽田氏宗中文書一括
영어의미역 Documents of Namyang Jeon Clan's Head Family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성봉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교지|호적 문서|유서
관련인물 전흥|전가생|전지(田漬)|전우평|전경업|전석규|전해|전유성|전시택|전탁
용도 관리 임명|호적 증빙
발급자 국왕
발급일시 1416년~1747년연표보기
소장처 전갑식
소장처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보물 제727호
문화재 지정일 1981년 7월 15일연표보기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남양전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의 고문서.

[형태]

남양전씨 종중에서 소유하고 있는 문서는 모두 27건으로 교지(敎旨) 23건, 유서 1건, 호적단자 3건 등이다. 1416년 전흥(田興)에게 내린 왕지(王旨)는 36.2×31.2㎝, 1417년 내린 왕지는 30.0×28.0㎝, 1434년에 내린 교지는 39.2×48.0㎝이다. 1454년 전가생(田稼生)에게 내린 교지는 45.2×48.9㎝, 1463년에 내린 교지는 41.7×54.8㎝ 크기이다. 1505년 전지(田漬)에게 내린 교지는 43.2×49.7㎝, 1515년 전우평(田禹平)에게 내린 교지는 43.3×56.9㎝ 크기이다.

1565년 전경업(田敬業)에게 남긴 유서는 89.8×58.2㎝, 1589년 전석규(田錫圭)에게 내린 백패(白牌)는 87.3×31.9㎝ 크기이다. 1624년 전해(田瀣)에게 내린 백패는 81.1×31.7㎝, 1650년에 내린 교첩(敎牒)은 51.2×65.9㎝, 같은 해에 내린 교지는 45.4×55.0㎝ 크기이다. 1651년 전해에게 내린 교지는 5건으로 46.4㎝×53.0㎝·46.3×54.0㎝·49.3×61.0㎝·48.2×57.5㎝·44.5×54.8㎝ 크기이다.

1651년 전유성(田有成)에게 내린 교첩은 45.4×54.2㎝ 크기이고, 1653년 전해에게 내린 교지는 46.7×46.8㎝, 1655년 전유성에게 내린 교첩은 47.2×47.8㎝, 1661년 전경업에게 내린 교첩은 48.6×67.4㎝ 크기이다. 1665년 전석규에게 내린 교지는 48.1×68.3㎝, 1666년 내린 교지는 50.0×67.7㎝, 1668년에 내린 교지는 48.0×66.9㎝ 크기이다.

1702년에 발급한 전유성의 호적단자는 51.8×50.5㎝, 1744년에 발급한 전시택(田時澤)의 호적단자는 44.8×42.2㎝, 1747년에 발급한 전탁(田鐸)의 호적단자는 44.0×44.6㎝ 크기이다.

[구성/내용]

남양전씨 종중 문서 일괄의 종류는 전흥에게 내린 왕지 2건과 교지 1건, 전가생에게 내린 교지 2건, 전청(田淸)에게 내린 교지 1건, 전우평에게 교지 1건, 그리고 전화(田華)가 장자인 전경업에게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조건으로 전답 및 노비를 나누어 준다는 분재기 1건과 교첩 1건, 전석규에게 내린 백패 1건과 교지 3건, 전해에게 내린 백패 1건과 교첩 1건 및 교지 7건, 전유성에게 내린 교첩 2건과 호적단자[준호구] 1건, 전시택의 호적단자[준호구] 1건, 전탁의 호적단자 1건 등이다.

교지는 국왕이 신하에게 관직·관작·자격·시호·토지·노비 등의 특전을 내릴 때 쓰는 문서 양식으로, 관리에게 관작을 내리는 교지는 고신(告身)이라 한다. 특히 조선 전기 태조정종 연간에는 교지라는 용어 대신 왕지라는 표현을 썼다. 남양 전씨 종중 문서는 그러한 예를 보여주는 자료로 의미가 있다.

백패는 생원과와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에게 내리는 것은 백패라 하고, 고신 중에 오품 이하관의 경우에는 대간의 서경(署經)이 있고, 이조와 병조에서 왕명을 받들어 발급하므로 교첩이라 한다. 호적단자는 관이 호구장적에서 원적에 준하여 발급하는 문서이다. 일반 백성이 준호구를 발급받는 이유는 소송을 위한 첨부 자료, 노비 소유[추쇄]의 자료, 가문의 신분 유지 등에 이용하기 위해서이다.

[의의와 평가]

남양전씨 종중 문서 일괄은 1416년(태종 16)에서 1747년(영조 23) 사이의 문서로 27장 모두 보물 제727호로 지정되었다. 태종전흥에게 내린 왕지 2건과 교지 1건은 조선 전기의 왕지와 교지의 문서 양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태종 연간의 왕지는 매우 희소하여 자료적 가치가 높다. 또한 전답과 노비 분급 기록인 유서는 당시의 가족 제도, 상속 제도 및 사회사와 경제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국가기록유산(http://www.memorykorea.go.kr)
  • 문화재청(http://www.cha.go.kr)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3.13 한자 수정 南陽全氏 -> 南陽田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