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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0223
한자 舊江景勞動組合
영어의미역 Ganggyeong Union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염천리 20[옥녀봉로27번길 30-5]지도보기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은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7년 4월 30일연표보기 - 구 강경노동조합 국가등록문화재 제323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구 강경노동조합 국가등록문화재 재지정
성격 노동조합
설립연도/일시 1910년연표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국가등록문화재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었던 노동 운동 단체.

[설립목적]

구 강경노동조합은 1910년 중반 강경포구의 하역 작업 처리 업무를 담당하던 노동자들이 결성한 조직체로서, 일반적인 의미의 노동조합이라기보다는 하역 노동자들의 동업자 모임에 가까운 조직이었다.

[변천]

1920년대 당시 내륙 지방으로의 수산물 유통은 대부분 강경포구를 통해 전국으로 유통되었기 때문에 강경노동조합의 규모나 세력은 대단하였다. 강경노동조합은 한때 조합원이 2~3천 명에 달할 정도였으며, 조합원들은 하루에 200여 척의 하역 작업을 처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25년 10월 당시 조합장이자 객주였던 정흥섭(금융조합 평의원, 강경청년회 회원)은 5천 원의 사재를 출연하여 2층짜리 조합 사무실을 신축하였다.

조합사무실 신축에 따라 강경노동조합은 동년 10월 3일 지역 유지들을 초청하여 성대한 낙성식을 거행하였는데, 당시 초대된 유지는 부면장 김용진, 상애회 대표 김성원, 장업사장 고선환, 청년회장 윤길중, 『동아일보』 강경지국장 노명우, 청년회원 정광진, 보통학교 교사 윤창구, 『조선일보』 강경지국총무 우호경, 면협의원 강희작, 『조선신문』 지국장 송영, 수양단 강경지부장 등이었다. 이 같은 성격으로 말미암아 강경노동조합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보다는 오히려 신구 노조원들 간의 대립으로 갈등을 빚었다.

갈등의 일례로, 1930년 정월 초 강경 지역의 하역 노동자들 수백 명이 신구 노조원인 강경노동조합 대 강경민우회 노동부로 갈리어 집단 패싸움을 벌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수십 명의 노동자들이 경찰서에 구금되고, 3명은 검사국에 송치되는 일까지 생겼다. 두 조합 측의 충돌은 동년 4월 강경하주조조합의 주선으로 두 조합이 합병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의의와 평가]

구 강경노동조합 건물은 본래 2층의 일본 목조 건축 양식 건물이었으나 관리 소홀로 2층 부분이 무너져 내리면서 현재는 1층만이 남아 있다. 정면 중앙부에 입구를 두고 돌출된 작은 지붕으로 포치를 구성하고 있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로 강경 지역 근대 상권의 흥망성쇠를 엿볼 수 있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2007년 4월 30일 국가등록문화재 제32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10.07 내용수정 "문화재 지정번호 및 지정일시" 추가 "문화재 유형은 등록문화재 → 국가등록문화재"로 수정
이용자 의견
지** '구 강경노동조합 (舊 江景勞動組合)이 2007.04.30. 국가등록문화재 323호로 지정'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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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답변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기하신 의견에 따라 내용수정을 완료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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