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곡면 산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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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유생이자 효자. 자는 공직(公直), 호는 중화재(中和齋).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강의(姜毅)이다. 강응정은 부모에 대한 효가 지극하여 1470년(성종 1) 효행으로 관직에 천거되었으나 이를 사양하였다. 1483년 생원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 유생으로 김용석(金用石), 신종호(申從濩), 박연(朴演), 손효조(孫孝祖), 정경조(鄭敬祖), 권주(權柱) 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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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에서 말로 전승되는 민간 지식의 총체. 구비전승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구비문학이라고 불러왔던 민간문예물들이다. 구비문학의 구비(口碑)는 본래 구전(口傳)에서 온 것이다. 기왕의 글로 기록되어 전하거나 기록된 문학과는 서로 상반된다. 요컨대 현장에서 글이 아닌 말로 전승되는 문학을 구비문학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또한 구비문학은 함께 만들어내는 문학으로서의 성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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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산등에 있어서 등골 또는 등리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가야곡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두면(上豆面)의 두계리(杜溪里) 일부와 갈마면(葛麻面)의 목곡리(木谷里)와 성덕리(城德里)의 각 일부, 송산면(松山面) 와야리(瓦也里)의 각 일부, 연산군(連山郡) 적사곡면(赤寺谷面)의 중하성리(中下城里) 일부를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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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나무가 무성하여 나무골 또는 목곡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갈마면(葛麻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촌리(坪村里)와 서촌리(西村里)를 병합하고 목곡리라 하여 가야곡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가야곡면 목곡리가 되었다. 목곡리의 남부는 해발고도 230여m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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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병풍처럼 생긴 병풍바위가 있어서 병암이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갈마면(葛麻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매오리(梅梧里)·신촌리(新村里) 일부 가야곡면 조정리(釣亭里) 일부, 연산군(連山郡) 적사곡면(赤寺谷面)의 동상리(東床里) 일부, 모촌면(茅村面) 거사리(居士里)·신흥리(新興里)·신계리(新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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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융을 시조로 하고 서정수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부여서씨는 의자왕의 아들 서융(徐隆, 부여융이라고도 함)을 시조로 하고 있다. 서융은 660년(의자왕 22)에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패하여 멸망한 뒤 의자왕과 함께 당나라에 끌려갔다. 당나라 고종은 서융에게 서씨의 성을 하사하여 본국으로 돌려보냈다고 전한다. 이후 세계(世系)는 알 수 없으나, 서융의 원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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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옛날부터 구비 전승되어 오는 이야기. 설화는 신화와 전설, 민담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지역성이 제대로 드러나는 설화는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이야기가 전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증거물을 갖추어야 한다. 이 증거물은 바위나 암석·수목·성곽·인물 등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대상은 반드시 특정 지역에 위치하거나 연고를 두게 된다.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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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일부 마을이 탑정저수지로 인하여 침수되었는데, 남아 있는 부분의 산기슭에 정자처럼 생긴 바위와 병풍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낚시터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하여 조정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갈마면의 신촌리 일부를 병합하여 조정리라 하고 가야곡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가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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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나라의 환곡 창고가 있어서 환적골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함적골 또는 함적곡이라 하였다. 충청남도 은진군 갈마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국동리, 장사리, 남촌리를 병합하여 함적리라 하고 가야곡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게 되었다. 행정구역은 함적1리·함적2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