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읍의 옥녀봉 아래에 위치한 강경포구는 육상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전국 3대 시장으로 불릴 만큼 충청권 일대를 상권으로 하는 주요 결절지이며, 수송 적환지였다. 이곳이 본격적으로 수산물시장의 역할을 한 것은 구한말 대자본을 가진 객주들의 등장부터이다. 천혜의 내륙항으로 일찍부터 수운이 발달한 강경포구는 금강 하구의 관문으로 서해에서 들어오는 각종 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은진현(恩津縣)편에 의하면 예전의 강경포는 강경산 아래 있는 해진(海津)이며, 강경산 봉수는 전라도 용안현(龍安縣) 광두원산(廣頭院山)에 응하고, 북으로는 황화산(皇華山)에 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조선시대의 강경은 한양과 호남간 봉화(烽火)의 중계지였다. 17세기 초의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직후였으므로 전쟁의 피해복구...
조선 중기의 종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수원. 할아버지는 중종이며, 아버지는 선조의 형인 하원군, 어머니는 영의정 홍섬의 딸인 남양홍씨이다. 군수 소수의 딸 진주소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5남 4녀를 두었다. 13세 때 익성정을 배수하고 그 뒤에 도정으로 승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선조가 의주에 파천되어 북방으로부터 하원군을 모시고 여러 달 만에 행재소에 다다르니 선조...
충청남도 논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종교 교단. 1952년 찬물교(饌物敎) 신도였던 제주 출신 부경순(夫景順)이 어느 날 정신이 이상했다가 찬물교 교주 김봉남(金奉南)의 치료를 받고 회복되었다. 그러더니 주문을 외우며 환각에 빠지고 토설을 하면서 도통의 경지에 이르렀고, 옥황상제·해월신·미륵불을 믿는 천지대안교를 세웠다고 한다. 천지대안교는 운도설에 따라 후천 개벽을 통한 세계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