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득을 시조로 하고 김사행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김남득(金南得)은 경순왕의 11세손 의성군(義城君) 김석(金錫)의 장손으로 고려 때 전리좌랑(典理佐郞)을 역임한 김의(金宜)의 첫째 아들이다. 김남득의 본명은 김기지(金麒芝)였다. 1340년(충혜왕 1) 진사시에 합격하여 감찰집의를 지내고, 공민왕 때 양광도안렴사를 역임하였으며, 판개성부사문하평리(判開城府事門...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할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김장생(金莊生)이고, 아버지는 김임(金銋)이다. 김수문은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한 뒤 여진족이 함경도 종성에 침입하여 사람들을 납치해 가자 1535년(중종 30) 영건만호(永建萬戶)로서 전투에 참가하여 납치되었던 사람들을 구해 왔다. 1546년(명종 1) 동래부사가 되었으며 1549년 김해부사 재직시 구...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호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무관 김수문의 신도비 귀부. 김수문(金秀文)은 명종 때의 무관으로 자는 성장(成章), 호는 양촌(陽村)이고, 본관은 고령으로 김임(金銋)의 아들이다. 중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영달만호(永達萬戶)가 되어 야인들과의 전투 후 종성(鍾城)에서 납치되었던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 때는 제주목사로 공을 세워...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고령. 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김장생(金莊生)이고, 어머니는 훈련원 참군 노승주의 딸이다. 김임은 논산시 노성면 일대의 토지를 대부분 소유한 만석의 거부로서 사람들이 산림재상(山林宰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선비로서 풍류를 즐기면서 여생을 보냈다. 묘소는 논산시 노성면 호암1리에 있다. 1513년(중종 8)에 호조판서를...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호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임의 신도비. 김임의 본관은 고령, 자는 평경(平卿)으로 김수문의 부친이다. 김임은 노성에 거주하면서 1513년(중종 8) 진사로 호조판서에 증직되었는데, 당시 만석꾼으로서 인근 30리가 그의 소유지였다. 이에 산림재상(山林宰相)이라 불렸다고 전한다. 그러나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선비로 살면서 객들을 불러 술자리를 베풀고 풍류를 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