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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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병절교위 김균(金鈞)이고, 어머니는 국세인(鞠世仁)의 딸로서 담양국씨(潭陽鞠氏)이다. 김성휘는 유복자로 태어나 집안이 궁핍하여 학문의 길에 나갈 수 없었지만 어려서부터 치산(治産)에 힘써 재부를 축적, 당대의 거부가 되었다. 1592년(선조 26)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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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임화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성휘의 묘비. 김성휘는 유복자로 태어나 배움을 얻지 못했으나 산업에 힘을 기울여 인근에서 알아주는 부자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나라가 재정적 어려움에 처하자 군량미를 헌납하여 국익을 도왔다. 벼슬은 형조참의에 이르렀고, 평생 일군 재산으로 구제 사업을 하면서도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일생을 마쳤다. 양촌면사무소에서 대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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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숙우, 호는 삼육재.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의 6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입부(立夫) 김성휘(金成輝)이다. 김정망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항상 손바닥에 ‘효우(孝友)’ 두 글자를 써 가지고 다니면서 한시도 잊지 않고 보곤 하였다. 어느 날 아버지가 병환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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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석서리에 있는 조선 중기 효자 김정망의 정려. 김정망의 자는 숙우(叔遇)이고, 호는 삼육재(三六齋)이다. 오강(梧岡) 김성휘(金成輝)의 손자로 김장생의 문하에서 수업하였고, 효우근신(孝友謹身)한 것을 계기로 추천이 되어 관직이 현감에 이르렀는데, 효우(孝友) 두 자를 손바닥에 써넣고 다녔다고 한다. 어느 날 부친이 병환으로 눕게 되자 정성껏 병간호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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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의 7세손이자 입부(立夫) 김성휘(金成輝)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효자 김정망(金廷望), 부인은 의령남씨(宜寧南氏)이다. 김중창은 일찍이 성균생원이 되었으나 특별히 관직에는 뜻을 두지 않아 초야에 묻혀 학문에 열중하며 집안일을 보살피고 처리하는데 전념하였다. 효자인 아버지의 효행을 옆에서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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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융을 시조로 하고 서정수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부여서씨는 의자왕의 아들 서융(徐隆, 부여융이라고도 함)을 시조로 하고 있다. 서융은 660년(의자왕 22)에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패하여 멸망한 뒤 의자왕과 함께 당나라에 끌려갔다. 당나라 고종은 서융에게 서씨의 성을 하사하여 본국으로 돌려보냈다고 전한다. 이후 세계(世系)는 알 수 없으나, 서융의 원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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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행림서원은 1867년(고종 4)에 세워진 부여 서씨의 문중 서원으로, 육곡리를 중심으로 세거하는 부여 서씨들의 상징적 유물이기도 하다. 논산시내에서 은진 사거리 쪽으로 가다가 왼쪽 가야곡면 방향으로 약 5㎞ 직진하면 노래골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야촌리 사거리 방면으로 지방도 68호선을 타고 약 2㎞ 직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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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가야곡면소재지에서 산소지를 거쳐 연산면으로 향하는 도로를 타고 4.5㎞ 가면 산노리 효암서원 앞에 이른다. 서원 입구 오른쪽에 강응정 정려가 있다 효암서원의 전신은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가야곡면 두월리의 갈산사로서, 1713년(숙종 39) 현재의 자리인 산노리에 다시 세운 것이다. 당시 갈산사는 중화재 강응정을 모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