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묘리는 시묘천을 따라 이어지는 지방도 602호선의 양쪽에 골짜기마다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물길 방향인 남동쪽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보면 시묘2리, 시묘1리, 시묘3리, 시묘4리의 순서로 이어진다. 시묘리는 4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구자곡면 시절에는 하나의 마을이었다가 구자곡면이 1936년 연무읍으로 승격되면서 시묘리는 은진면으로 편입되었고, 이때 인...
시묘리 네 개 마을에는 모두 각각의 동네계가 따로 결성되어 있다. 이중에 부수골의 동네계에서는 계장을 이장과는 별도로 새로 뽑는데, 임기가 3년이다. 이장은 동네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동계장은 주민들의 애경사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동계 모임이 있는 날이면 마을을 떠나 서울에 사는 사람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서 참석한다. 특히 동네...
옛날 시묘골과 황골 등지에서는 ‘고려장’ 또는 ‘고린장’이라 부르는 옛 사람들의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산속에 나무가 우거져 찾아 볼 수도 없고, 어떤 모양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도 없지만, 마을 어른들이 아이들을 앉혀놓고 고려장 지낸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지어내 들려주곤 하였다. 언뜻 돌로 만든 무덤 같았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시대 이전의 무덤이...
일제강점기는 그 어느 때보다 고생스러웠다. 일제의 수탈은 사람들의 삶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였기에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사실이 대단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가장 풍요로워야 할 가을 추수 때에는 일부러 달빛도 없는 한 밤을 틈타 쌀을 짊어지고 옮겼는데 혹시 낮에 들고 다니다가는 뺏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인들은 강제적으로 토지측량을 벌였고, 지적도에 소유자 명을 쓰라 하였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