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평천역(平川驛)이 있을 때 말을 먹이던 곳이 있어서 마굿들 또는 마구평(馬九坪)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고, 백제시대에 신마(神馬) 아홉 마리가 나타난 마을이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도 한다. 마구평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예부터 마구평리에는 말 아홉 마리가 함께 먹는 구마동식(九馬同食)의 만대영화지지(萬代榮華之地)의 명당이 있다고 전...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마구평리에서 마구평이란 이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백제 때의 일이다. 부적 땅인 신촌, 새뜰, 구룡동, 성태봉, 병촌동에서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무예를 닦고 있는 아홉 명의 장수가 있었다. 아홉 명의 장수는 무예에 뛰어났고 의리도 좋았다. 아홉 명의 장수는 ‘언젠가는 우리들의 무...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마구평리에 설립되었던 수리조합. 논산군은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들판이 넓은 지역이었다. 특히 북동쪽으로 논산천, 남동쪽으로 강경천을 따라 넓게 발달된 강경평야(논산평야)는 1920년 당시 논 23,854정보와 밭 7,326정보가 경작되던 대평원이었다. 강경평야는 논에서만 1년에 298,000석가량의 현미가 산출되는 등 조선의 3대 미작지대 중...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평천역(平川驛)이 있을 때 말을 먹이던 곳이 있어서 마굿들 또는 마구평(馬九坪)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고, 백제시대에 신마(神馬) 아홉 마리가 나타난 마을이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도 한다. 마구평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예부터 마구평리에는 말 아홉 마리가 함께 먹는 구마동식(九馬同食)의 만대영화지지(萬代榮華之地)의 명당이 있다고 전...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평천역(平川驛)이 있을 때 말을 먹이던 곳이 있어서 마굿들 또는 마구평(馬九坪)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고, 백제시대에 신마(神馬) 아홉 마리가 나타난 마을이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도 한다. 마구평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예부터 마구평리에는 말 아홉 마리가 함께 먹는 구마동식(九馬同食)의 만대영화지지(萬代榮華之地)의 명당이 있다고 전...
-
충청남도 논산시 등화동에서 마낭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백제 때 한 젊은 장수가 전장에 나가 많은 공을 세웠다. 젊은 장수는 백성들로부터 영웅이라 불렸고 임금의 총애도 받았다. 그러자 젊은 장수의 명예와 영화를 시기하는 간신 무리가 생겨났다. 마침 젊은 장수가 적의 습격을 받고 전투에 패하였다. 조정...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명당자리가 있다는 마산(馬山)이 있어서 이 마을 이름을 마산리 또는 마산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구자곡면(九子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화석리(火石里)·장등리(長登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다시 마산리라 하여 논산군 구자곡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명당자리가 있다는 마산(馬山)이 있어서 이 마을 이름을 마산리 또는 마산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구자곡면(九子谷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화석리(火石里)·장등리(長登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다시 마산리라 하여 논산군 구자곡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마산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14일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마산리는 약 300여 년 전에 형성된 마을이다. 유래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옛날부터 마산2리와 마산4리가 해마다 번갈아가면서 산제와 장승제를 지내왔다. 산제당은 마산초등학교 뒷산에 콘크리트 제단과 우물이 있다. 예전에는 신목으로 치성을 받는 소나무가 있었는데 말라 죽...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소룡리 성태봉에서 발원하여 안심리에서 강경천에 합류하는 하천. 마산천은 비교적 짧은 하천으로 우둠저수지가 축조되어 있고, 약 2㎞의 곡간을 지나 논산평야의 외곽에 이른다. 현재 이곳은 경지 정리가 잘 되어 있어 과거의 유로를 상실한 상태로 남아 있다. 2010년 말 현재 마산천의 유로 연장은 8.96㎞이고, 유역 면적은 13.56㎢이다. 제1지류는 논산천이고...
-
충청남도 논산시 매화산에 있는 백제시대 산성. 매화산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마야산고성(摩耶山古城)으로 나온다. 성의 둘레는 5,710척이고, 성 안에는 우물이 2개소 있으며, 조선 전기에는 이미 폐성(廢城)된 것으로 보인다. 논산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8㎞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면 육군훈련소로 유명한 연무읍(鍊武邑)에 이른다. 여기서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
-
주곡리는 마을 곳곳에 우물이 많아 물 걱정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한다. 마을에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4개의 우물을 포함해 개인이 사용하는 것까지 총 12개가 있었다. 마을회관을 기준으로 주곡리를 크게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구분하였을 때, 우물 수와 수질 면에서 두 동네가 다른 환경에 있었다. 윗동네의 경우 아랫동네보다 우물 수가 적고 수질이 좋지 않았다. 반대로 아랫동네는...
-
주곡리 마을 발전의 원동력은 자발적으로 운영되는 여러 공동조직에서 나온다. 청년회와 부녀회, 노인회 등이 그것인데, 특히 주곡리 부녀회는 마을의 살림살이뿐 아니라 시ㆍ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행사와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돕는다. 화합이 좋은 마을 사람들은 자주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하는데, 그때마다 부녀회에서 어르신들과 마을주민들의 식사를 모두 책임진다...
-
현재 논산의 시의원인 이계천 씨는 주곡리 마을의 자랑스런 인물 중 한 명이다. 1962년 주곡리에서 4남 3녀 중 2남으로 태어난 이계천 씨는 출생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함평이씨 선조 이삼 장군의 탄생일과 같은 날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체격이 크고 힘이 센 아이로 집안과 마을에서 장군감으로 유명하였다. 어려서 형편이 어려웠던 이계천 씨는 7살부터 농사를...
-
15살 때인 1947년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해 62년째 육곡리에서 살고 있는 이삼에(77) 씨는 여자노인회를 책임지고 있는 노인회장이다. 이삼에 씨의 고향은 연무대 근처였는데, 양촌에 살고 있던 큰아버지 댁을 방문하려고 가는 도중 육곡리를 지나게 되었다. 작은 아버지는 아는 분이 있으니 그 집에 좀 잠깐 들렸다 가자며 이삼에 씨의 아버지를 데리고 들어갔고 그 집이...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속하는 법정리. 삼밭과 내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삼밭내 또는 마전이라 하였다. 본래 전라북도 여산군(礪山郡) 공촌면(公村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야등리(野登里)·승지리(僧池里)·신량리(新良里)·구량리(舊良里)·장항리(獐項里)·송화리(松花里)·고분리(古分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전라북도 익산군 황화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 1월 1...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마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적. 마전리 유적은 A지구와 C지구로 나뉘어 각각 0.6㎞ 정도의 거리를 둔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A지구는 천호산에서 흘러내린 구릉의 남서쪽 비탈면에 있으며, C지구는 A지구에서 약간 떨어진 구릉의 남동쪽 비탈면과 그 아래의 저지대를 포함한다. 마전리 유적에 대한 조사는 천안논산고속도로가 지나갈 지역에 대한 문화재 발굴 조사 과...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마을 단위로 산신제를 올릴 때 각 가정에서 마련하는 떡시루. 산신제는 기본적으로 마을 전체를 위한 것이라 그 의례 절차에는 개인의 소망을 삽입시킬 수 있는 여백이 근원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물론 각 개인이나 가정이 화평하지 않고서는 마을의 안녕도 의미가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가정에서는 역시 독자적인 운수가 있는 것이다. 마짐시루는 마을에서 산...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마을 단위로 산신제를 올릴 때 각 가정에서 마련하는 떡시루. 산신제는 기본적으로 마을 전체를 위한 것이라 그 의례 절차에는 개인의 소망을 삽입시킬 수 있는 여백이 근원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물론 각 개인이나 가정이 화평하지 않고서는 마을의 안녕도 의미가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가정에서는 역시 독자적인 운수가 있는 것이다. 마짐시루는 마을에서 산...
-
B.C. 1세기~A.D. 3세기경 한강 유역으로부터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 분포되어 있던 여러 정치 집단의 통칭. 『삼국지(三國志)』 동이전에는 마한에 속한 55개 소국(小國) 명칭이 열기되어 있는데, 큰 것은 1만여 가(家), 작은 것은 수천 가였다고 한다. 규모가 큰 나라의 지배자는 신지(臣智), 작은 나라의 지배자는 읍차(邑借)라고 하였다. 삼한의 소국들은 70여 개국에 달했...
-
조선 전기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원훈각에 제향된 종친. 이방의는 태조 이성계의 셋째 아들로서 신의왕후 한씨의 소생이다. 형은 정종 이방과(李芳果)이며, 아우는 태종 이방원(李芳遠)이다. 왕자 가운데 가장 야심이 적어 아우 이방간과 이방원의 왕위계승 싸움에 중립을 지키고, 평소에 시사를 말하지 않았다. 1392년 조선이 개창되어 태조가 즉위하자, 이방의는 익안대군(益安大君)에 봉해졌...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 있던 기독교계 사립학교. 대한제국 말기 국망(國亡)에 대한 위기의식 고조와 선교사업 일환으로 사립학교에 의한 근대교육이 널리 보급되고 있었다. 특히 기독교에서는 여학교 설립을 통한 여성교육 보급에 박차를 기하였다. 충청남도 지방에서도 공주 영명여학교, 논산 영화여학교, 강경 만동여학교 등 여성교육기관이 설립되었는데, 이들 여학교는 일제강점기 말까...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높은 산의 좁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만목골 또는 만목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벌곡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망티[望峙], 독방리(讀房里), 신촌(新村), 사삼암리(思三岩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만목리라 하여 논산군 벌곡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벌곡면...
-
논산 출신의 시인. 김관식은 1934년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서 출생하였고, 논산시 강경읍의 중앙보통공립학교를 거쳐 강경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50년 강경상업고등학교 2학년 시절 남한의 여러 문인들을 찾아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시작하였다. 이후 충남대학교에 입학하였다가 고려대학교로 전학하고, 다시 동국대학교로 편입하였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정인보, 오세창,...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 행림서원에 있는 조선 중기 서익(徐益, 1542~1587)의 묘정비. 서익의 묘정비는 서익선생의 인품과 학문적 소양을 높이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1867년(고종 4)에 건립되었다. 가야곡면 육곡리 덕은골은 부여서씨의 집성촌이다. 덕은골은 백제 때 은진현 바깥을 다스리는 큰 고을이었는데, 부여서씨의 경우 이때부터 궁중을 드나드는 권위 있는 성씨였...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부여(夫餘). 자는 군수(君受), 호는 만죽(萬竹)·만죽헌(萬竹軒). 아버지는 서진남(徐震男)이고, 어머니는 직제학 이약해(李若海)의 딸로서 광주이씨(廣州李氏)이다. 서익은 1554년(명종 9) 13세 때에 향시에 장원하고 1564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569년(선조 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병조좌랑, 이조좌랑, 교리, 사인을 역...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부여(夫餘). 자는 군수(君受), 호는 만죽(萬竹)·만죽헌(萬竹軒). 아버지는 서진남(徐震男)이고, 어머니는 직제학 이약해(李若海)의 딸로서 광주이씨(廣州李氏)이다. 서익은 1554년(명종 9) 13세 때에 향시에 장원하고 1564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1569년(선조 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병조좌랑, 이조좌랑, 교리, 사인을 역...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서 말고개와 여우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에 마음씨 착하고 부지런한 머슴 박서방이 살았다. 하루는 박서방이 몸이 아파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어 사랑방에 누워 있었다. 그러자 주인 김생원이 “비가 올 것 같으니 어서 산에 가서 나무를 해...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과 부적면에 걸쳐 있는 탑정저수지 일원에서 겨울을 나는 수리과에 속하는 새. 몸길이는 약 55㎝이다. 암수가 외형적으로 비슷하다. 이마, 머리 꼭대기, 뒷머리는 갈색이고 각 깃은 가장자리가 황갈색이다. 날개는 넓고 꽁지깃은 짧다. 몸의 윗면은 갈색이고 깃털 가장자리는 붉다. 가슴은 희고, 아랫면은 연한 황갈색 바탕에 붉은 갈색 가로무늬가 있으며 턱에는 수영...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양리에서 계백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1년 11월 3일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양리에서 이지형(남, 59)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2005년에 민속원에서 출간한 『구전설화』14에 수록하였다.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표정리와 관동리 뒷산을 성재라고 하는데, 성재가 황산성의 본성이다. 성을 중심으로 산 쪽을 성안이라 하고 그 반대쪽을...
-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왕전리에서 말머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전라도 지방에 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선비는 어릴 때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책읽기를 즐겨하였다. 그 일대에서는 선비의 학문을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학식이 높았다. 사람들이 선비를 찾아가 과거를 보라고 권유하였으나 선비...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경계에 있는 고개. 고개 아래에 만목리 또는 말목이라는 마을이 있어 이에 근거하여 말목재라고 부르게 되었다. 고생대 오도비스기에서 캠브리아기 사이에 형성된 옥천층군문주리층을 기반암으로 주로 흑운모편암과 견운모편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개 북쪽을 지나 남~북 방향의 골짜기가 있어서 왕암천이 흐르고 있고, 이 하천에 의해 형성된...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과 부적면·강경읍을 흐르는 논산천 수계에 서식하는 기름종개과에 속하는 민물고기. 몸길이는 약 7~10㎝이다. 머리와 몸은 굵고 옆으로 약간 납작한 긴 막대 모양이다. 주둥이는 일반적으로 앞으로 길게 돌출되어 뾰족하며 주둥이 아래에 입이 열리며 주변에 4쌍의 작은 입수염이 있다. 눈은 머리 중앙의 위쪽에 있으며 그 아래에는 작고 끝이 2개로 갈라진 가시가 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서 국산 콩을 이용하여 만든 양조간장. 맛가마간장은 1994년 창립한 맛가마식품에서 만드는 재래간장이다. 맛가마간장은 맛가마식품 창업주인 도기갑(都基甲, 1934~2003)이 전통 방식의 재래간장과 기업 방식의 양조간장의 장점을 혼합하여 개발하였다. 재래간장은 콩을 메주로 만들어 담그는데, 메주 속이 잘 발효되지 않고 부패하여 냄새가 나면서 간장이나 된...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서 머스크멜론을 주품종으로 생산하는 특산 과일. 노성멜론은 10여 년 전부터 재배에 나섰으나 수해와 재배 기술의 낙후로 번번이 실패를 맛보았다. 2004년 이전까지 농가별로 생산한 멜론을 출하했지만 일조량이 적당치 못하고 품질이 균일하지 않아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였다. 이후 노성농업협동조합으로부터 재배기술을 전수받고 전라남도 담양의 선진지를 견학...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의 금강 지류와 앞바다에 서식하는 멸치과에 속하는 물고기. 웅어는 갈대 속에서 많이 자라서 갈대 위(葦) 자를 써서 위어(葦魚, 갈대고기)라고도 한다. 강경에서는 우여, 의주에서는 웅에, 해주에서는 차나리, 충청도 등지에서는 우어라고 불린다. 몸길이는 약 22~30㎝이다. 몸통은 가늘고 길며 배의 모서리 부분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꼬리는 가늘며 길다. 입은 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과 상월면에 걸쳐 있는 노성산 일대에 서식하는 올빼미과에 속하는 새. 몸길이는 약 18.5~21.5㎝이다. 몸 빛깔은 잿빛과 갈색 또는 붉은 갈색이다. 잿빛이 나는 암수는 이마와 정수리, 목에 엷은 잿빛 갈색 바탕에 짙은 어두운 갈색의 무늬가 있다. 얼굴·가슴·배에는 짙은 갈색 무늬가 있고, 등·어깨·허리에는 붉고 어두운 잿빛 갈색 바탕에 벌레 먹은 모양의 무...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7월 보름에 행하는 세시풍속. 음력 7월 15일을 말하는 백중은 원래 백종(百種)이라고 했다. 중원(中元) 혹은 망혼일(亡魂日)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 백종은 이 무렵 과실과 소채(蔬菜)가 많이 나와 옛날에는 100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백중의 유래는 도가와 불교에서 찾을 수 있다. 중원(中元)은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일대에 서식하는 매과에 속하는 새. 편 날개의 길이는 수컷 30㎝, 암컷 37㎝ 정도로 독수리보다 작다. 암컷과 수컷은 배 쪽이 푸른 잿빛으로 머리꼭대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아랫면의 바탕색은 크림색 또는 녹슨 황색이며 잿빛이나 붉게 녹슨 색을 띠지 않는다. 아랫면의 검은색 가로 얼룩무늬는 가늘고 엷은 색이다. 날개의 폭은 넓고 길다. 눈 밑의 검은 무늬는 크...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의령(宜寧). 호는 매계(梅溪). 남준은 호서 출신 거유 조헌(趙憲)과 막역한 사이로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을 도와 전투에 참여하여 선전관으로 의병을 모집하였고, 군량을 운반하는 책임을 맡았다. 가장 치열하였다고 회자되는 금산 전투에 참여하여 용감하게 싸우다 조헌과 함께 전사하였다. 1858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에 있는...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뒤에 꽃이 많이 피는 화산(花山)이 있어 화산 또는 매꽃미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화산면(花山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광교리(光橋里)를 병합하고 중리(中里)라 하여 논산군 채운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화산리로 명칭이 개칭되었으며,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채운면...
-
조선 전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근보(謹甫), 호는 매죽헌(梅竹軒). 개성유후(開城留侯) 성석용(成石瑢)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판중추부사 성달생(成達生)이고, 아버지는 도총관(都摠管)을 지낸 성승(成勝)이며, 어머니는 현감 박첨(朴襜)의 딸이다. 병자사화(丙子士禍) 때 성삼문의 동생 성삼빙(成三聘), 성삼고(成三顧), 성삼성(成三省)과 아들 성맹...
-
충청남도 논산시 매화산에 있는 백제시대 산성. 매화산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마야산고성(摩耶山古城)으로 나온다. 성의 둘레는 5,710척이고, 성 안에는 우물이 2개소 있으며, 조선 전기에는 이미 폐성(廢城)된 것으로 보인다. 논산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8㎞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면 육군훈련소로 유명한 연무읍(鍊武邑)에 이른다. 여기서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와 계룡시 남선면 부남리 경계에 있는 고개. 향적산(574m)에 매달린 것 같이 보인다고 하여 맨재 또는 현령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계룡산의 남쪽 산릉인 천황봉(845.1m)~함지봉(386.5m)에 이르는 능선에 속하는 고개이다. 이 산줄기는 주로 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능선 부분은 산성암맥류인 그라노파이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멘재도 이에 속...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농기구 등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공구. 모루는 대장간(칭냥간)에서 사용하는 공구로, 단조(鍛造) 작업에서 단조 재료를 올려놓고 망치로 때려서 가공할 때 쓴다. 논산 지역에서는 모루를 머릿독이라고도 부른다. ‘독’은 ‘돌’의 논산 방언이다. 모루는 길고 두껍고 넓은 쇠로 만드는데, 윗부분은 판판하다. 모루 위에 불에 달군 낫, 칼, 호미, 자구, 괭이, 창,...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7월 보름에 행하는 세시풍속. 음력 7월 15일을 말하는 백중은 원래 백종(百種)이라고 했다. 중원(中元) 혹은 망혼일(亡魂日)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 백종은 이 무렵 과실과 소채(蔬菜)가 많이 나와 옛날에는 100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백중의 유래는 도가와 불교에서 찾을 수 있다. 중원(中元)은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알곡이나 농산물을 담아 두는 농기구. 처음엔 볏짚 등을 엮어 만들었으며, 이후에는 닥나무 껍질을 섞어서 만들거나 종이로 만들기도 했다. 차츰 모양도 예쁘게 만들어 썼으나 값싸고 다양한 플라스틱 그릇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차츰 자취를 감추어 요즘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통기성이 좋아 곡식 등을 보관하기에는 좋지만, 요즘에는 경제성이 없어 메꾸리를 만드는 사람이...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와 계룡시 남선면 부남리 경계에 있는 고개. 향적산(574m)에 매달린 것 같이 보인다고 하여 맨재 또는 현령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계룡산의 남쪽 산릉인 천황봉(845.1m)~함지봉(386.5m)에 이르는 능선에 속하는 고개이다. 이 산줄기는 주로 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능선 부분은 산성암맥류인 그라노파이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멘재도 이에 속...
-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의 금강 지류와 앞바다에 서식하는 멸치과에 속하는 물고기. 웅어는 갈대 속에서 많이 자라서 갈대 위(葦) 자를 써서 위어(葦魚, 갈대고기)라고도 한다. 강경에서는 우여, 의주에서는 웅에, 해주에서는 차나리, 충청도 등지에서는 우어라고 불린다. 몸길이는 약 22~30㎝이다. 몸통은 가늘고 길며 배의 모서리 부분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꼬리는 가늘며 길다. 입은 커...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소룡리에서 명당자리 등토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경상도에 한 유생이 살았다. 유생은 자손을 번창시켜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하는 명문가를 만드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래서 유생은 전국 방방곡곡에 있다는 명당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에 있는 등토...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채광리에서 명당자리 새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에 중국의 이름난 지관이 명당을 찾기 위해 조선에 왔다. 지관은 조상의 유골을 가지고 우리나라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아무리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녀도 명당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하루는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 아버지는 영천군수를 지낸 송이창(宋爾昌)이다. 1624년(인조 2) 진사가 되었고, 1630년 학행으로 천거되어 세마(洗馬)에 제수된 이후 효종이 즉위할 때까지 내시교관(內侍敎官)·동몽교관(童蒙敎官)·대군사부·형조좌랑·사헌부지평·한성부판관 등에 임명되었으나 대부분 관직에 나아가지...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명숙(明叔), 호는 설봉(雪峰). 할아버지는 윤돈(尹暾), 아버지는 윤창세(尹昌世)이다. 훗날 설봉공파를 이루었다. 1590년(선조 23)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593년 아버지 윤창세가 죽자 시묘를 살았다. 1600년(선조 33)에 능참봉(陵參奉)을 제수 받았으며, 1601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임명되고 이어...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울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이름을 따서 명암리라 부르게 되었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모촌면(茅村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왕대리(旺垈里)·중명암리(中鳴岩里)·하명암리(下鳴岩里)·신량리(新良里)·반곡리(盤谷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명암리라 하여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명암리에 있는 고려 후기 기와 가마터. 명암리 와요지는 백제문화개발연구원이 지원하여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진행한 논산 지역 문화유적지표조사 과정에서 가마터가 확인되었다. 지표상에서 기와를 구웠던 가마의 구조나 전체 범위를 알 수 있는 흔적은 없으나 많은 양의 기와 조각과 가마 벽이 파손되는 과정에서 노출된 것으로 판단되는 소토 조각이 나온 것으로 보아 가마가...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왕암리에서 유의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0년 4월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왕암리에서 안치연(남, 82)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2005년 민속원에서 출간한 『한국구전설화집』14에 수록하였다. 옛날 어떤 남자의 아내가 몸이 퉁퉁 부은 채 앓아누웠다. 남자는 다급한 마음에 유의태를 찾아갔다. 유의태가 “어찌 오는가?” 하고 물으니 남자는 “...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명재 윤증의 영정을 모신 사당. 노성면소재지에서 공주로 향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3㎞를 가면 병사교가 있다. 이곳에서 남서쪽 소로를 따라 300m 정도 가면 유봉마을에 이르는데, 이곳에 유봉 영당이 자리 잡고 있다. 기호 유현이자 성리학의 대가로서 소론의 영수였던 윤증(1629~1714)은 40세 때 병사리로 낙향하여 강...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峰). 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며, 어머니는 공주이씨(公州李氏)로 이장백(李長白)의 딸이다. 효종 말년 학업과 행실이 뛰어나 조정에 천거되었고, 1663년(현종 4) 35세에 공경(公卿)과 삼사(三司)가 함께 그를 천거하였다. 이듬해 내시교관에 제수되고, 이후 공조랑·사헌부지평에 제수...
-
1732년(영조 8)에 간행된 조선 후기 논산 출신 문신 윤증의 문집. 윤증(尹拯, 1629~1714)의 종손(從孫) 윤동수(尹東洙, 1674~1739)가 쓴 발문(跋文)에 의하면 1732년 윤증의 아들 윤행교(尹行敎)와 손자 윤동원(尹東源)이 『주자대전(朱子大全)』의 범례에 따라서 서차를 정하여 편집하고 활자로 인출(印出)하여 간행하였다. 이후 1800년대 초반에 중간이 이루어졌...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서 명재 윤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명재 윤증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이다.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峯)이며, 윤증이 이름이다. 예론에 정통한 학자로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저서로 『명재유고(明齋遺稿)』 등이 있다. 2007년 2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마을에서 윤석간(남, 80세)·...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서 명재 윤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명재 윤증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이다.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峯)이며, 윤증이 이름이다. 예론에 정통한 학자로 여러 차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저서로 『명재유고(明齋遺稿)』 등이 있다. 2007년 2월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유봉마을에서 전승희(여, 73)가...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명절에 준비하여 먹는 음식. 명절음식은 때에 맞추어 먹는 음식이라 하여 시절(時節)음식이라고도 한다. 명절을 맞이하여 해당 절기(節氣)에 생산된 재료로 음식을 마련해 먹는데 설날의 떡국, 정월 대보름날의 보름밥과 묵은 나물, 단오의 쑥떡, 유두의 밀국수, 복날의 개장국, 추석의 송편, 시월의 첫무리떡, 동지의 팥죽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때는 모처럼 맞은 농...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 일대에서 생산되는 고구마. 고구마는 100g에 30㎎ 정도의 비타민 C를 함유하고 있는데, 이 비타민 C는 가열해도 60%가 파괴되지 않고 남아 있다. 그리고 고구마 100g 중에는 칼륨 400㎎이 함유하여 몸 안의 여분 염분을 소변과 함께 배출시켜 고혈압 등 성인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 등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구마·호박·당근을...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농기구 등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공구. 모루는 대장간(칭냥간)에서 사용하는 공구로, 단조(鍛造) 작업에서 단조 재료를 올려놓고 망치로 때려서 가공할 때 쓴다. 논산 지역에서는 모루를 머릿독이라고도 부른다. ‘독’은 ‘돌’의 논산 방언이다. 모루는 길고 두껍고 넓은 쇠로 만드는데, 윗부분은 판판하다. 모루 위에 불에 달군 낫, 칼, 호미, 자구, 괭이, 창,...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호·김계휘를 제향하는 재실. 모선재는 조선 중기 예학의 대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조부(祖父)인 김호와 부친 김계휘(金繼輝)의 위패를 모시기 위하여 자손들이 건립한 재실이다. 정확한 건립 연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대략 1700년대 초반인 것으로 전한다.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서 서쪽으로 1.5㎞ 가면...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논에 모를 심을 때 부르는 노동요. 연무읍 안심리(백갑석), 가야곡면 육곡리(김혜동·신정길·윤은중), 광석면 득윤리(고석중)와 이사리(박영길), 노성면 읍내리(김우현), 두마면 향한리(민영식·하선녀), 벌곡면 사정리(정구채)와 신양리(안경순·이매홍·고오복) 그리고 도산리(조기성), 부적면 아호리(정진용·정만현·권정옥), 상월면 대명1리(박명종 등)와 학당리(...
-
시묘리 네 개 마을에는 모두 각각의 동네계가 따로 결성되어 있다. 이중에 부수골의 동네계에서는 계장을 이장과는 별도로 새로 뽑는데, 임기가 3년이다. 이장은 동네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동계장은 주민들의 애경사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동계 모임이 있는 날이면 마을을 떠나 서울에 사는 사람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서 참석한다. 특히 동네...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에서 모를 찌면서 불렀던 농업노동요. 논산 지역의 「모찌기 소리」는 별도로 있지 않으나, 상월면 대명리에서는 “뭉쳐 뭉쳐 뭉쳐 놓세”를 받음구로 하는 뭉치세 류를 모찔 때 부른다. 2002년도에 상월면 대명리 1구의 주민 박명종과 이재원 등의 창을 채록하였다. 메기고 받는 멕받형식이다. 전국적으로는 먼데류·쪘네류·철더럭쿵류·불림곡 유용류 등과 경상도 모...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띠가 많이 있어서 띠울 또는 모촌이라 하였다. 본래 연산군(連山郡) 모촌면(茅村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리곡리(高里谷理)·웅천리(熊川里)·신계리(新溪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모촌리라 하여 논산군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양촌면 모촌리가 되었다. 모촌리의 북부는...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모촌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백제시대 칼. 모촌리 고분군은 백제문화개발연구원의 지원으로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1992년과 1993년 2차에 걸쳐 발굴 조사하였다. 1992년 조사에서는 백제 수혈식 석실분 13기, 횡혈식 석실분 1기, 옹관묘 1기가 조사되었으며, 1993년 조사에서는 수혈식 석실분 15기와 함께 석축묘 2기, 옹관묘 2기가 배장 형태로 조성되었다...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모촌리에 있는 백제시대 산성. 신흥리 산성은 모촌리에 위치하기 때문에 모촌리 산성으로 부르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부터 신흥리 산성으로 알려져 온 만큼 혼란을 피하기 위해 그대로 신흥리 산성으로 불리고 있다. 연산사거리에서 남쪽으로 난 지방도 697호선을 타고 약 6㎞ 정도 가면 양촌면 모촌리 곰내마을에 이른다. 신흥리 산성은 곰내마을의 뒤쪽에...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과 상월면에 걸쳐 있는 노성산 일대에 서식하는 올빼미과에 속하는 새. 몸길이는 70㎝ 정도의 대형 야행성 맹금류이다. 귀깃이 매우 특이한데, 크기가 칡부엉이의 2배 정도 된다. 겉으로는 암수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으며 보통 수컷보다 암컷이 약간 크다. 깃털은 진한 갈색에 검은색 세로 줄무늬가 있고 눈은 붉은색이다. 머리꼭대기는 갈색을 띤 검은색이고, 각 깃털은...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나무가 무성하여 나무골 또는 목곡이라 하였다. 본래 은진군(恩津郡) 갈마면(葛麻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촌리(坪村里)와 서촌리(西村里)를 병합하고 목곡리라 하여 가야곡면에 편입되었다. 1996년 3월 1일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가야곡면 목곡리가 되었다. 목곡리의 남부는 해발고도 230여m의 구...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곡식이나 눈 따위를 한곳으로 밀어 모으기 위해 만든 도구. 죽가래는 판자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도끼·자귀 등을 이용하여 커다란 통나무를 깎아 가래처럼 만들어 썼던 농기구이다. 농가에서 일반적으로 흔히 쓰이던 농기구는 아니었으며, 대농가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도구였다. 죽가래는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농가에서 농한기 때 큰 통나무를 삽 모양으로 깎아 만들어 썼...
-
오랜 세월동안 꿋꿋하게 전통을 이어온 주곡리 장승제는 과거 존폐와 관련하여 두 번의 큰 위기를 맞았었다고 한다. 바로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0년대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의 일이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주곡리에서는 매년 6기의 목장승(4기)과 짐대(2기)를 깎아 세웠으나, 일제는 삼림법을 엄하게 적용하여 장승목으로 쓸 나무를 벌목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매년 새 나무로 장...
-
해송공예의 대표 문재필 씨는 맨손으로 시작해 목칠공예의 일가를 일궈낸 인물이다. 차분한 목소리와 곧은 자세의 외모는 빈틈없어 보이면서 충청도 사람 특유의 인정미가 넘친다. 문재필 씨는 논산시 성동면 삼산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성동면 일대는 석성천과 논산천 그리고 금강이 삼면을 둘러싼 넓은 평지로 호남평야의 시작이 되는 논산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이다....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곡식이나 눈 따위를 한곳으로 밀어 모으기 위해 만든 도구. 죽가래는 판자를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도끼·자귀 등을 이용하여 커다란 통나무를 깎아 가래처럼 만들어 썼던 농기구이다. 농가에서 일반적으로 흔히 쓰이던 농기구는 아니었으며, 대농가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도구였다. 죽가래는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농가에서 농한기 때 큰 통나무를 삽 모양으로 깎아 만들어 썼...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산성리의 논산천 수계에 서식하는 잉어과 민물고기. 몸길이는 약 8~10㎝이다. 몸은 가늘고 길며 옆으로 납작하고 길게 늘어나 있다. 긴몰개보다 크게 자란다. 주둥이는 다소 둥글고 큰 편이며 입도 매우 크고 입구석이 눈의 앞 끝에 닿는다. 1쌍의 입수염은 참몰개의 입수염보다 짧아서 눈의 반지름보다도 짧다. 옆줄은 몸 양쪽 옆 중앙부를 달리며 앞부분이 배 쪽으로...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지경리·대명리에서 조석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학당리 바우내에서 박재림(남, 76)·박재홍(남, 72)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2003년 암천정신연구소에서 출간한 『암천 박증과 모곡서원』에 수록하였다. 17세기 중엽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지경리에 박상문이란 인물이 살았다. 박상문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무속 의례를 집전하는 인물. 무당(巫堂)은 신령과 단골을 중개하여 인간의 문제를 풀어내는 무속인이다. 흔히 무당이라 하면 격렬한 엑스터시를 전제로 하여 춤과 노래로서 신령을 초빙하고 또한 놀려서 인간문제를 풀어버리는 선굿의 종교 직능자를 연상한다. 논산 지역 무당에는 만신(萬神) 또는 보살이라 부르는 여성 무당이 있으며, 남성 독경자(讀經者)인 남성 법사(法...
-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둔산에서 흐르는 물이 바위틈으로 흘러서 떨어지는 모양이 진경이라 하여 수락리 또는 무수골이라 하였다. 연산군 벌곡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신고운리, 상벌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수락리라 하고 논산군 벌곡면에 편입하였다.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승격함에 따라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가 되었다. 수락1리, 수락2리의 2개...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와 벌곡면 수락리 경계에 있는 고개. 동쪽에는 무수티라는 마을이 있는데, 선인무수형(仙人舞袖形)의 명당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무수티라 불렸고, 고개 이름도 여기서 따서 부르게 되었다. 무수재 북쪽으로 바랑산(555.4m)과 월성봉(647m) 등의 산이 솟아 있다. 고개 인근을 비롯한 북쪽 산지들의 기반암은 중생대 화강암대를 관입한 응회암이 주요 산체를...
-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와 벌곡면 수락리 경계에 있는 고개. 동쪽에는 무수티라는 마을이 있는데, 선인무수형(仙人舞袖形)의 명당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무수티라 불렸고, 고개 이름도 여기서 따서 부르게 되었다. 무수재 북쪽으로 바랑산(555.4m)과 월성봉(647m) 등의 산이 솟아 있다. 고개 인근을 비롯한 북쪽 산지들의 기반암은 중생대 화강암대를 관입한 응회암이 주요 산체를...
-
박진승을 시조로 하고 박증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무안박씨 시조는 박진승(朴進昇)으로,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여섯 째 아들 완산대군 박언화의 후예이다. 박진승은 고려 전기에 공을 세워 무안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정착하여 살면서 본관을 무안이라 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고려시대의 박승중(朴昇中), 조선시대의 박의장(朴毅長)·박홍장(朴弘長)·박창하(朴昌夏),...
-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촌리에서 무안박씨 명당자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 때의 일이다.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촌리에 살고 있던 무안박씨가 세상을 떠나자 그 자손들은 부모의 묏자리를 명당자리에 쓰려 하였다. 주위의 이름 있는 지관을 불러다가 묏자리를 물색하였지만 마음에 드는 장소를...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마구평리와 양촌면 인천리에 있는 자동 기상 관측 시설. 자동기상관측소는 유선 또는 무선통신을 통하여 사람이 상주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의 관측값을 원거리에 있는 본부에 자동적으로 통보하는 관측소로 무인기상관측소라고도 한다. 무선로봇·부표 등이 대표적인 예이며, 섬·사막·산지·해양 등 사람이 상주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외딴 곳에 설치한다. 기상청에서는 기상관측소...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4리 모청마을에 있는 조선 말기 무작금의 충노비. 무작금 비는 이례적으로 김수남의 정려와 묘소에 각각 한 기씩 세움으로써 죽어서도 충신 김수남을 지키는 충노로서 역할을 하게 하였다. 김수남의 묘소는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에 있지만 김수남은 은진면 사람으로 정려가 연무읍 금곡4리에 있어 무작금의 비 또한 김수남 정려 옆에 세워져 있는 것을 알 수 있...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가뭄이 들었을 때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올리는 의례. 기우제는 농경사회의 한 풍습으로 비가 오지 않을 때 주민의 집단행사로서 마을 단위로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규모가 큰 경우에는 면 단위 또는 군 차원에서 기우제를 거행하기도 한다. 예전에 기우제장으로 주로 활용되었던 곳은 용(龍)이 깃들어 있는 산천을 비롯하여 민간에서 신성시되는 우물·바위·못·저수지...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 할아버지는 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수안군수를 지낸 유대경(兪大敬)이고,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유양증(兪養曾)이다. 어머니는 의령남씨(宜寧南氏)로 병조참판 남이신(南以信)의 딸이며, 부인은 세종대왕 9세손 이산악(李山岳)의 딸 전주이씨(?~1667)이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유...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무화(茂和). 할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 아버지는 좌참찬 김겸광(金謙光), 어머니는 사직 진계손(陳繼孫)의 딸로서 삼척진씨(三陟陳氏)이다. 숙부는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김국광(金國光)이다. 김극개는 1496년(연산군 3) 진사시에 합격하고 1519년(중종 14) 식년시 문과에 병과 19인으로 급제하였다. 병조정랑, 훈련원...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불망기념비. 무후지고혼 불망기념비는 충·효·열 삼강(三綱)을 행하고 죽은 인물 중 자손이 없어서 그 행적이 전해지지 않는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졌다. 논산에서 공주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10.4㎞ 가다 보면 하도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여 약 3㎞ 가다가 상월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가다 보면 노성 궐리사가...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유생.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여화(汝和), 호는 기기재(棄棄齋)·묵계(默溪). 광성군(光城君) 김겸광(金謙光)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김하겸(金夏兼)이고, 어머니는 진사 이중과(李仲科)의 딸로서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큰아버지 김용겸(金用兼)에게 입양되었다. 김상연은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서 배웠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1716년(숙종 42) 부친상을 당...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보(士輔), 호는 묵옹(黙翁)·신독재(愼獨齋). 좌의정(左議政) 김국광(金國光)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김계휘(金繼輝)이고, 아버지는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이다. 어머니는 첫째 부인 창녕조씨(昌寧趙氏) 사후 들어온 측실이다. 형은 김영(金榮), 김경(金檠), 김고(金杲), 김구(金榘), 김규(金槼), 이복형제는 김은(...
-
조선 중기 활동한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익지(翼之), 호는 묵재(默齋). 아버지는 찰방 김적이며, 어머니는 화순최씨(和順崔氏)로 좌윤 최원지(崔遠之)의 딸이다. 1614년(광해군 6) 사마시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갔으며, 많은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628년(인조 6)에는 의금부도사가 되었으며, 1630년(인조 8)은 장악원직장이 되었다. 1631년(인조 9) 감찰을 지내...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여익(汝翼), 호는 퇴어(退漁). 김장생의 현손이며, 할아버지는 참판 김익훈(金益勳)이다. 아버지는 김만채(金萬埰)이며, 어머니는 이항(李杭)의 딸이다. 김진상은 1699년(숙종 25) 진사가 되었으며, 1712년(숙종 38)에 정시문과 응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설서·지평 등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1720년(숙종 46)...
-
조선 중기 논산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사강(士剛), 호는 신독재(愼獨齋). 아버지는 사계 김장생이며,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로 첨지중추부사 조대건(曺大乾)의 딸이다. 김집은 1591년(선조 24) 진사로 합격하였다. 그러나 사장학(詞章學)을 좋아하지 않아 경전연구와 수양에 전심을 다하였으며, 아버지의 학문을 이어받기 위해 노력하였다. 1610년(광해군 2) 헌릉참봉에...
-
충청남도 논산시 휴정서원에 배향된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여산(礪山). 아버지는 판관 송사련(宋祀連)이다. 송익필은 할머니 감정(甘丁)이 안돈후(安敦厚)의 천첩 소생으로 신분이 미천하였으나 아버지 송사련이 안처겸(安處謙)의 역모를 조작 고발하여 공신에 책봉되고 당상관에 올라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송익필은 재능이 비상하고 문장이 뛰어나 아우 송한필(宋翰弼)과 함께 일찍부터...
-
조선 중기의 문인.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길보(吉甫), 호 미촌(美村)·노서(魯西)·산천재(山泉齋).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成渾)의 딸이다. 윤문거(尹文擧)가 형이며, 윤증(尹拯)이 아들이다. 1633년(인조 11) 식년문과에 형 윤문거와 함께 급제하였다. 1636년 청나라 사신이 입국하자 성균관의 유생들을 모아, 사신의 목을...
-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학자.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峰). 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며, 어머니는 공주이씨(公州李氏)로 이장백(李長白)의 딸이다. 효종 말년 학업과 행실이 뛰어나 조정에 천거되었고, 1663년(현종 4) 35세에 공경(公卿)과 삼사(三司)가 함께 그를 천거하였다. 이듬해 내시교관에 제수되고, 이후 공조랑·사헌부지평에 제수...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김장생은 송익필(宋翼弼)로부터 예학을 배웠으며, 이이(李珥)의 문하에 들어가 성리학을 배워 조선 중기 예학과 성리학의 거두가 되었다. 과거를 거치지 않고 관직을 역임하여 요직을 맡지는 않았지만, 인조반정 이후 서인의 영수로 영향력이 매우 커서 인조 초의 정국을 서인 중심으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김장생의 예학은 아들 김집에게 계승...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이자 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菴)·우재(尤齋). 봉사(奉事)를 지낸 송구수(宋龜壽)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이고,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다. 어머니는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로서 선산곽씨(善山郭氏)이다. 1625년(인조 3)에 도사...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 아버지는 영천군수를 지낸 송이창(宋爾昌)이다. 1624년(인조 2) 진사가 되었고, 1630년 학행으로 천거되어 세마(洗馬)에 제수된 이후 효종이 즉위할 때까지 내시교관(內侍敎官)·동몽교관(童蒙敎官)·대군사부·형조좌랑·사헌부지평·한성부판관 등에 임명되었으나 대부분 관직에 나아가지...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덕요(德耀), 호는 팔송(八松)·노곡(魯谷). 아버지는 윤창세이며, 장인은 성혼이다. 슬하에 8형제를 두었는데 후손들이 매우 번성하여 14명의 대과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윤순거·윤문거·윤선거·윤증 등 호서 유림의 큰 줄기를 이룬 이들이 모두 이 가계에서 나왔다. 1597년(선조 30)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금천(衿川). 자는 복이(復而), 호는 월당(月塘)·삼당(三塘). 아버지는 이조참의를 역임한 강찬(姜燦)이고, 외할아버지는 김은휘(金殷輝)이다. 딸이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빈(嬪)이 되었다. 큰아버지인 강돈(姜焞)에게 입양되었다. 강석기는 김장생의 문하에서 송준길(宋浚吉)과 함께 예학(禮學)을 공부하였으며, 훗날 입신양명하여 김장생 문하의 구대...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중문(仲文), 호는 창주(滄州). 할아버지는 김장생(金長生)이고, 아버지는 김반(金槃)이다. 어머니는 서주(徐澍)의 딸로서 연안서씨(延安徐氏)이다. 동생은 김익겸(金益兼)이다. 김익희는 1633년(인조 1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부정자에 등용되었다. 그 해 검열을 거쳐 홍문록(弘文錄)에 올랐다. 1635년 수찬과 사서...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개인 혹은 여러 사람의 시나 문장을 모아 엮은 책. 문집이라는 말은 중국 양(梁)나라 완효서(阮孝緖)에 의해 『칠록(七錄)』이 만들어질 때 그 분류 항목 중의 하나인 문집록(文集錄)에서 나왔다. 이후 경(經)·사(史)·자(子)·집(集)의 4부분류법(四部分類法)이 일반화되면서 문집은 집부(集部)에 귀속되었다. 문집은 거기에 수록된 저자의 수에 따라 총집(總集)과...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영숙(永淑), 호는 서석(瑞石)·정관재(靜觀齋).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이다. 아버지는 김익겸(金益謙)이고, 어머니는 해남부원군(海南府院君) 윤두수(尹斗壽)의 4세손이자 영의정 문익공(文翼公) 윤방(尹昉)의 증손녀이며 예조참판 윤지(尹墀)의 딸로서 해평윤씨(海平尹氏)이다. 숙부는 김익희(金益熙), 동생은 『구운몽(九雲夢)』을...
-
조선 중기 논산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 할아버지는 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수안군수를 지낸 유대경(兪大敬)이고,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유양증(兪養曾)이다. 어머니는 의령남씨(宜寧南氏)로 병조참판 남이신(南以信)의 딸이며, 부인은 세종대왕 9세손 이산악(李山岳)의 딸 전주이씨(?~1667)이다.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유...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구체적이며 비유적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논산 문학의 대상 범위는 논산에서 태어나 논산에서 문학 활동을 했던 작가들과 논산에서 출생한 뒤 타지에 가서 활동한 작가, 그리고 논산 지역의 문학 활동에 참여하여 논산 문학 발전에 기여한 작가들과 작품들이다. 조선시대의 논산 문학은 주로 한문학이 주류를 이룬다. 논산 지역 인물들의 문집은...
-
충청남도 논산시 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문학단체. 논산의 문학단체는 시동인회로부터 출발했다. 1960년대 초반에 논산의 중고등학생들로 조직된 요람벌시동인회는 시인 김대현이 학생들에게 문학 이론과 창작 방법을 지도하면서 발전해 나갔다. 이들은 회원들의 작품들을 모아 시동인집 『요람벌』을 발간하기도 했다. 1965년에는 논산 지역 문학 지망생들을 모아 황산벌시동인회를 조직하였는데, 김영...
-
충청남도 논산시 취암동에 있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논산지회 산하 문학단체. 한국문인협회 논산지부는 1991년 11월 30여 명의 지역 문인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1992년 ‘문학의 해’를 앞두고, 지역 문학의 활성화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서울권에 집중된 문학 활동만으로는 우리나라 문학의 진정한 발전을 도모하기 어렵다는 데 공감하고 지역문학의 활성화와 문화 도시로서의 논산의 위상...
-
충청남도 논산시의 현대 문화 예술 전반과 예술 문화 단체들의 활동 현황. 논산 지역 문화·예술의 양대 산맥은 논산문화원과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논산지회라 할 수 있다. 처음 논산에서 현대 문화·예술 활동이 시작되어 걸음마 단계에 있던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정도까지는 논산문화원에서 향토전통문화 발굴, 축제행사, 문학, 미술, 음악, 영화, 서예, 농악 등 거의 모든 문화·예...
-
충청남도 논산시 내동에 있는 문화 예술 공연 및 전시장. 1980년대 논산군 내의 전시·공연장으로는 화지산신용협동조합에서 운영하던 화지산문화공간이 있었다. 그러나 화지산문화공간은 전시 공간이 넉넉지 못하고 공연장으로 사용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라 군민들은 대규모 문화 공간이 건립되기를 기대하였다. 이에 따라 1985년 8월 10일 논산군에서 논산군 예산 8억 6천6백만 원과 지역...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 있는 국가 및 지방 지정 문화유산. 문화재는 유형에 따라 유형문화재·무형문화재·기념물·민속자료 등으로 나뉘고, 지정 여부에 따라 지정문화재와 비지정문화재로 구분된다. 2008년 현재 논산시에는 국가지정문화재 12점(보물 7점·천연기념물 1점·사적 2점·중요민속문화재 2점), 도지정문화재 44점(유형문화재 24점·무형문화재 1점·기념물 15점·민속자료 4점),...
-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에서 강응정의 효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 때의 일이다. 현재의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에 강응정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강응정은 아버지가 일찍 죽어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나무를 해다 팔아 가며 지성으로 병간호를 하였다. 어느...
-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오랜 세월 동안 벼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옛부터 육곡리는 지대가 높아 물이 부족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주민들의 가장 큰 걱정은 비가 오지 않아 한 해 농사를 망치지지나 않을까 하는 것으로 논산 지역에 가뭄이 들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마을이 육곡리라고 할 정도다. 봄비가 내리지 않았던 해에는 한여름 중복까지도 모내기를 못하고 밭에 벼를 심어 수확한...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두사리와 광석면 사월리 경계에 있는 고개. 고개의 모양이 옥녀가 물레를 잣는 형국이라서 물레치라고 부른다. 물레치는 반상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진 23m의 낮은 고개이다. 주변은 대체로 논산천의 작은 지류 하천들에 의해 개석된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고, 고개의 남쪽으로 논산천의 지류인 노성천이 흐르고 있다. 논산시 대교동에서 연산천과 합류하여 논산천에 유입되고 있...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두사리와 광석면 사월리 경계에 있는 고개. 고개의 모양이 옥녀가 물레를 잣는 형국이라서 물레치라고 부른다. 물레치는 반상화강섬록암으로 이루어진 23m의 낮은 고개이다. 주변은 대체로 논산천의 작은 지류 하천들에 의해 개석된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고, 고개의 남쪽으로 논산천의 지류인 노성천이 흐르고 있다. 논산시 대교동에서 연산천과 합류하여 논산천에 유입되고 있...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음력 6월 15일에 지내던 명절. 유두(流頭)인 음력 6월 15일은 흔히 유월명절이라고 한다. 유두는 연중 가장 바쁜 시기로, ‘미끈유월’이라는 말처럼 이맘때가 되면 두레의 김매기로 짬이 없다. 밭농사도 마무리 손길로 분주한 때이다. 현재 유둣날의 세시풍속은 오래 전에 소멸되어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우며, 이는 논산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별미로 먹던 밀국수는...
-
논산시에서는 딸기를 특화시켜 농장주들에 대한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중 새로운 재배방식인 수경재배가 주목받으며 매년 몇 군데 농장을 선정에 보조금을 지급해 수경재배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06년 신청자 가운데 뽑힌 5개의 농장은 딸기재배 경력이 있고 농장 상황이 가능한 곳들이었다. 당시 시묘리에서는 2개의 농장에서 지원을 받아 수경재배를 시작하게...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물통을 나를 때 사용하는 지게. 물지게는 예부터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 농촌 지역에서 많은 양의 물을 효과적으로 나르기 위하여 만들어 썼던 생활도구이다. 물동이는 여자만 이고 다녔지만 물지게는 남녀 구분 없이 졌다. 물동이에 담긴 물을 머리에 이고 다니다가 물지게가 나와 공동우물이나 마을 공동수도에서 물을 길어다 먹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그러나 농촌에도 19...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돌다리. 강경 미내다리는 채운면 삼거리 강경천에 설치되었으며, 조선시대 충청도와 전라도를 연결하는 도로상에 놓였던 다리이다. 강경 미내다리는 길이 30m, 너비 2.8m, 높이 4.5m로 건설 당시 삼남 지역에서 제일 규모가 큰 다리였다. 3개의 홍예(虹霓)는 가운데가 크고 남북쪽이 약간 작으며, 받침은 긴 장대석으로 쌓고 그 위에...
-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야화리에서 미내다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서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야화리 사포 방면으로 1㎞가량 올라가다 보면 제방 밑에 세 개의 아치형 돌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에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옛날에는 다리가 없어 강을 건너려면 배를 타야만 하였다. 그래서 마...
-
충청남도 논산시의 전통가옥에서 사용된 문. 옆으로 밀고 닫는 문이라 하여 미닫이라고 부르는데, 구개음화에 따라 미다지라고도 한다. 또한 논산 지역에서는 문을 밀어서 연다고 하여 밀창이라고도 하며 영창, 이응창이라고도 부른다. 미닫이는 세로로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손잡이는 파여 있고 주 재료는 나무이다. 나무로 틀을 짜고 가운데를 송판으로 막거나 문살을 넣고 그 위에 종이를 바른...
-
충청남도 논산시의 전통가옥에서 사용된 문. 옆으로 밀고 닫는 문이라 하여 미닫이라고 부르는데, 구개음화에 따라 미다지라고도 한다. 또한 논산 지역에서는 문을 밀어서 연다고 하여 밀창이라고도 하며 영창, 이응창이라고도 부른다. 미닫이는 세로로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손잡이는 파여 있고 주 재료는 나무이다. 나무로 틀을 짜고 가운데를 송판으로 막거나 문살을 넣고 그 위에 종이를 바른...
-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한 논산 지역의 예술. 미술은 일정한 세계상이나 인간상을 미적·조형적으로 표현하는 예술로 그림·조각·건축·공예·서예 등을 총칭하는 말로 공간 예술 또는 조형 예술로 불리기도 한다.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 생활이 이루어지면서 다양한 미술활동으로 많은 미술품들이 전해지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논산 지역 미술을 시대별로 개관한다....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산성리 논산천에 서식하는 메기과 민물고기. 몸길이는 약 15~25㎝이다. 메기와 비슷하나 더 가늘고 길다. 몸은 앞쪽은 원통 모양이나 뒤쪽으로 갈수록 납작하다. 등지느러미는 아주 작아 눈 지름보다 약간 길며 비늘은 없다. 등 쪽에서 보면 주둥이가 직선형으로 아래턱이 튀어 나와 있어서 입은 위를 향해 열린다. 입수염은 앞 콧구멍의 앞과 아래에 각각 1쌍이 붙어...
-
조선 중기의 문인.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길보(吉甫), 호 미촌(美村)·노서(魯西)·산천재(山泉齋).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成渾)의 딸이다. 윤문거(尹文擧)가 형이며, 윤증(尹拯)이 아들이다. 1633년(인조 11) 식년문과에 형 윤문거와 함께 급제하였다. 1636년 청나라 사신이 입국하자 성균관의 유생들을 모아, 사신의 목을...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법사가 정신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행하는 굿. 충청도 지방의 법사들이 전통적으로 치러왔던 독경 위주의 앉은굿에는 안택굿과 미친굿이 유명하다. 안택굿이 음력 정월이나 시월에 가내의 평안을 위한 굿이라면, 미친굿은 귀신이나 도깨비가 빌미가 된 정신병 환자를 치유하기 위한 치병 의례를 말한다. 안택굿의 기본 절차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미친굿은 앉은굿 법사의 문서...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법사가 정신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행하는 굿. 충청도 지방의 법사들이 전통적으로 치러왔던 독경 위주의 앉은굿에는 안택굿과 미친굿이 유명하다. 안택굿이 음력 정월이나 시월에 가내의 평안을 위한 굿이라면, 미친굿은 귀신이나 도깨비가 빌미가 된 정신병 환자를 치유하기 위한 치병 의례를 말한다. 안택굿의 기본 절차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미친굿은 앉은굿 법사의 문서...
-
충청남도 논산 지역 민간에서 오래 전부터 믿어져 내려온 신앙. 민간신앙은 매우 폭넓은 개념이어서 민속학에서도 한정된 분야에 그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마을신앙, 가정신앙, 무속신앙, 풍수신앙, 점복신앙 그리고 자연물 신앙 등이 모두 민간신앙에 들며, 금기(禁忌)·주부(呪符)·주술(呪術) 행위 등도 포함한다. 여기에서는 마을신앙과 가정신앙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논산 지역은 구릉성 산...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현감 민동호의 선정비. 논산시에서 공주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타고 약 10.2㎞ 가다 보면 하도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0.19㎞ 가다가 우회전하여 오른쪽 방향으로 약 2㎞ 직진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상월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가다 보면 노성면사무소가 보인다. 민동호 선정비는 노성면사무소 근처에 있는 노성교회 아래 노성면...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지역에서 전개된 문화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은 3·1운동 이후 일제가 공포한 조선교육령에 의한 관립 경성제국대학 설립에 대응하여 이상재(李商在)를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이 민족교육과 민족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민립대학을 설립하려고 한 운동이다. 구체적인 실천을 위하여 조선민립대학기성회의 창립과 더불어 당시 충청남도 논산지역에서도 이에 호응하여 지방부가 조직되었다....
-
조선 전기 활동한 무신. 본관은 여흥. 자는 분충(奮忠). 할아버지는 여원군 민백훤(閔伯萱)이고, 아버지는 좌찬성 여강군 민수산(閔壽山)이다. 여흥민씨 위양공파의 파조이다. 민발은 1437년(세종 19)에 음보로 내금위에 속하였다가 여러 벼슬을 거쳐 부사직에 이르렀다. 1450년 수양대군을 따라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53년(단종 1)에는 사복시대호군으로 있다가 무과에 합격하여...
-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송산리 사당에서 행하는 민발의 불천위제사. 민발(閔發, 1419~1482)은 조선 세조 때의 공신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1467년(세조13)에 이시애 등의 반군을 무찌른 공으로 정충적개공신(精忠敵愾功臣)의 호를 받고 여산군에 봉군(封君)되었다. 민발의 불천위제(不遷位祭)는 여흥민씨 위양공파에서 나라의 허락을 받아, 4대 봉사가 끝나더라도 민발의 신주를 사당에...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민간의 생활 풍습. 민속은 한 문화권 내에서 다수가 향유하고 있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문화로 민중들이 자연적·역사적·사회적 환경에 대처하고 적응하는 지혜와 믿음으로 엮어낸 생활양식이다. 또 각 절기에 따른 생활 풍습과 생산 관계가 반영되어 있다. 이는 민속 문화의 창작자와 수요자 자체가 생산자 농민이거나 어민·수공업자·상인들이었던 탓이다. 민의...
-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논산 지역의 생활과 습관을 반영한 놀이. 논산 지역은 넓은 들판을 소유하고 있어 예부터 농사와 관련한 민속놀이가 발달되어 있다. 민속놀이는 개인 놀이와 집단 놀이로 나눌 수 있는데, 개인 놀이에는 연날리기·윷놀이·들돌들기·종경도(從卿圖) 등이 있고, 집단 놀이에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된 연산백중놀이와 술멕이·줄다리기·쥐불놀이·지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던 조선 말기 도순사 민영상의 영세불망비. 『고종실록(高宗實錄)』의 기록에 의하면, 민영상이 자신이 관할하는 평택(平澤)과 직산(稷山) 두 고을의 백성이 곤궁하고 어려움에 처하자 세금 감면을 요구하였다고 되어 있어, 이러한 공적으로 불망비가 세워진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1889년(고종 26) 2월 10일자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는 민영상 불...
-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논산사람들이 그 생활환경, 감정 및 생각을 표현한 노래로서 오랜 세월동안 구전으로 전해 오는 노래. 민요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생활의 필요에 의해 생성되고 향유되고 전승된 민간의 노래를 말한다. 민요의 종류는 각 나라의 민요 실태와 관점 및 필요에 따라 달리 분류될 수 있는 바, 민요 분류의 잣대로는 지역, 대상, 소재, 가창방법, 선법, 기능 등을 생각해 볼...
-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여산부사 민의호의 불망비. 논산시에서 전주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8.95㎞ 직진하다 보면 황화교차로가 나온다. 여기에서 왼쪽 방향으로 가다 보면 봉곡서원이 나온다. 민의호 불망비는 봉곡서원 바깥 담장 아래에 서향으로 서 있다. 비석은 귀접이형으로 높이 100㎝, 너비 40.5㎝, 두께 11㎝이다. 앞면 좌우에 공적 내용이...
-
일제강점기 민족의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전개한 논산 지역의 모든 저항운동의 범칭. 민족운동은 소수 민족이 다수 민족의 억압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식민지 상태나 종속 상태에서 압박당하는 민족이 지배 민족이나 국가의 압박에서 벗어나 독립하려는 운동을 범칭하는 말로 민족해방운동이라고도 한다. 민족은 그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여야 한다는 민족자결(民族自決)의 이념을 바탕으로 특히 식민지...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공충도관찰사를 지낸 민치상의 선정비. 민치상(1825~1888)은 1867년 공충도관찰사가 되었으며, 뒤이어 1870년 11월까지 공충감사(公忠監司)를 잉임(仍任)한 기록이 있다. 민치상 선정비가 신미년에 건립되었으므로 민치상의 재임 시기와 신미년을 대조하면 1871년(고종 8)을 선정비의 건립 연대로 짐작할 수 있다. 논산시에서 공...
-
조선 중기 논산 출신의 의병. 본관은 여흥(驪興). 조선 전기의 무신 여산군(驪山君) 민발(閔發)의 후손이다. 민흥기는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던 중에 정유왜란이 일어났다. 그는 신주(神主)와 노모를 업고 피난하였는데, 피난 중에 아무리 창졸간이라도 상복을 벗는 일이 없었고 조석으로 곡(哭)을 빠뜨리지 않았다. 여가에는 맛있는 음식을 구하여 노모를 봉양하니 조익(趙翼)...
-
박언침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밀양박씨 시조는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큰아들 밀성대군 박언침(朴彦忱)이다. 경명왕은 여덟 아들을 모두 대군으로 봉하였고, 이들의 후손이 대군의 봉호를 받은 연고를 따라 각 박씨의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밀양박씨는 우리나라에서 김해김씨 다음으로 자손이 번성한 성씨로, 분파도 상당히 복잡하다. 시조 박언침 이후 자손들의 분파도 많은...
-
손순을 시조로 하고 손온의 자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논산시 세거 성씨. 밀양손씨는 신라 흥덕왕 때의 효자로 유명한 손순(孫順)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손순은 신라 개국 당시 6부 촌장의 한 사람인 대수촌장 구례마(俱禮馬)의 후손이다. 손이라는 성씨는 구례마가 받았다. 손순은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 출신으로, 지극한 효성으로 왕에게까지 알려져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고 문효라는...
-
충청남도 논산시의 전통가옥에서 사용된 문. 옆으로 밀고 닫는 문이라 하여 미닫이라고 부르는데, 구개음화에 따라 미다지라고도 한다. 또한 논산 지역에서는 문을 밀어서 연다고 하여 밀창이라고도 하며 영창, 이응창이라고도 부른다. 미닫이는 세로로 긴 직사각형 모양으로, 손잡이는 파여 있고 주 재료는 나무이다. 나무로 틀을 짜고 가운데를 송판으로 막거나 문살을 넣고 그 위에 종이를 바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