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꿋꿋하게 이어지는 주곡리 장승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E020104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집필자 조민희

일제의 압박 속에서도 꿋꿋하게 전통을 이어갔던 주곡리 장승은 해방 후에 급속도로 산업화되는 사회가 전개되면서 새로운 위기를 맞았다. 1970년대에 접어들자 우리나라는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었고 전근대적 미신 타파, 부락제의 경비 절감으로 인해 수많은 마을 장승들은 급격히 소멸되어 갔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주곡리 장승 또한 온전히 그 모습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곡리에서도 새마을 사업을 주도했던 이장과 새마을 지도자, 그리고 신흥 기독교 신자들에게 장승의 철거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들은 장승이 미관도 그러하거니와 새로운 마을길을 내는 데에도 방해가 되니 없애자는 의견을 냈고, 이내 장승을 없애자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말기에도 목장승을 석장승으로 대체하면서까지 그 전통을 지켜온 마을주민들과 당시 논산군수의 권고로 인해 다행히 철거만은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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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장승

1970년대 중반, 전국적인 새마을 운동의 바람은 더욱 거세졌고, 지붕과 담장이 개량되고 도로가 확장되었다. 이어서 1976년에 이루어진 ‘마을 입구 환경정비 작업’은 결국 장승과 참나무를 철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승이 이대로 사라져 버리는 것을 아쉬워한 일부 마을주민들의 반대와 염원으로 인해 주곡리 장승은 다시 한 번 그 모습이 변하게 되었으니, 바로 ‘시멘트 장승’이다. 시멘트로라도 만들어 세우자는 일부 마을 사람들의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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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장승

그러나 시멘트로 만든 장승은 얼마 못가 다시 목장승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그 이유를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한 삼년간 시멘트 기둥을 모셨는데 흉흉한 사고가 나고 해서 다시 나무로 만들었지, 정성이 부족하니껜 그런 일이 생기는 거지. 실감도 안 나고.”

이처럼 장승제의 영험함을 굳게 믿고 있던 마을사람들에 의해 시멘트 장승이 아닌 목장승으로 다시 바뀌게 된 것이다.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목장승은 다행히 2008년 현재에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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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대장군

새마을 운동 때에 세워진 시멘트 장승 또한 일제 때의 석장승과 함께 장승배기에 남아있다. 한때 목장승의 기능을 대신했던 이 기둥은 현재 또 다른 기막힌 역할을 하고 있으니, 바로 목장승들을 묶어놓아 쓰러지지 않게 하는 튼튼한 버팀목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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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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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장승

[정보 제공자]

이방헌(1926년생, 주곡리 주민)

양희갑(1929년생, 동계장)

양철한(1932년생, 노인회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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