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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와 숭선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E010204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민희

주곡리 전주이씨의 입향 과정에 대해서는 대체로 청주양씨와의 혼인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전하나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취 등 선대의 묘역이 경기도 고양, 양주 일대에 있다가 이취의 고손자인 이만근(李萬根, 1658~?)의 묘가 주곡리에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1600년대 후반 이후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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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 관련 문서

망가리에 전주이씨는 지금은 비록 2집 밖에 살고 있지 않지만, 2005년에 조사되어 기록된 『논산 주곡리 장승제의 지속과 변화』에 의하면, 1935년까지만 해도 10여 호가 일가를 이루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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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리 전경

망가리에는 조선 전기 정치개혁을 추진하다가 역모에 연루되어 귀양살이를 했던 이취(李灇, 1487~1544)의 사당이 있다. 이취의 호는 마재(磨齋)이고, 세종의 별자 덕원군서(德源君曙)의 아들이다. 처음 위패는 이취의 후손이 숙종 대에 주곡리로 낙향하여 12대 300여 년간 종가 별실에 봉안하였다. 그러다가 1990년 12월에 고택 종가 신축으로 인하여 종가에 장소에 사우를 짓고 위패를 모셔 매년 시제를 지내고 있다.

사당에는 문헌공 이취와 부인 진주강씨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현재(2008년) 이취의 사당에는 ‘숭선사’라는 현판이 전면에 걸려 있는데 이취의 군호인 ‘숭선군’으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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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선사 전경

2005년에는 전주이씨 관련 문서 16점이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에 기탁되었다. 특히 이 문서 중에는 이취(李灇)의 시호교지를 비롯한 교지류, 서경단자, 소지류 등이 있는데 마을에 살고 있던 해평윤씨와의 산송문제 등 주곡리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정보 제공자]

이우열(1942년생, 주곡리 주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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