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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와 체험행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A030201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시묘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홍제연

❚ 딸기 농사의 시작

효자농장 의 김은옥 씨는 1960년대 후반에 딸기농사를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딸기를 재배하려는 농가가 거의 없었다. 제대로 키우기만 하면 비싼 값에 팔 수 있었지만, 농사짓기에는 까다로운 품목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노지재배는 어려웠고 비닐하우스가 반드시 필요한데, 하우스 시설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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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농장 김은옥씨

초기에는 대나무를 얇게 자르고 비닐을 덮어 나지막한 하우스를 만들어 활용했다. 비닐의 질도 나쁜데다 약한 대나무로 버티다 보면 바람만 세게 불어도 다 뜯겨 버리기 일쑤였다. 그래도 당시에 키웠던 딸기는 서울 워커힐 호텔에 납품할 만큼 품질이 좋았다. 호텔 식품 관계자가 김은옥 씨의 딸기를 보고 매우 흡족해 하며 그때 가격으로 ㎏당 100원을 더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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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하우스 전경

김은옥 씨는 이때부터 딸기농사가 전망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딸기는 보관기간이 매우 짧아서 수입이 어려운데다 농가가 많지 않아 가격이 굉장히 높았기 때문이다. 호텔과 부유층들에게나 공급되는 과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김은옥 씨 부부는 농사법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경기도 일산의 꽃 단지의 대형 하우스를 참고해 밭고랑 6개 이상을 덮을 수 있는 대형 비닐하우스를 만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시설비용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1970~80년대는 딸기수익률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으므로 비용 회수에 걸리는 시간이 짧았지만, 만약 지금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한다면 어려움이 클 정도이다. 귀농하여 딸기농사를 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우선 고려해야 할 점이다. 기본시설을 구성하는 데에만도 큰 돈이 들기 때문이다.

❚ 체험행사에 뛰어들다.

딸기체험이라는 건 농민들에게 생소한 일이었다. 농사짓는 것을 누가 체험한단 말인가. 김은옥 씨 역시 처음에는 이해도 안됐고, 딸기처럼 예민한 녀석을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인들이 와서 헤집어 놓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도시에서 살던 친척 아이들 몇 명이 놀러왔을 때 딸기밭에 풀어주고 마음껏 먹어보라 했더니 그렇게 좋아하면서 맛있다고 신나 하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을 바꿨다. 친척의 피붙이뿐만 아니라 아무 인연이 없는 사람들 모두에게 싱싱한 딸기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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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농장 입구

그때부터 체험행사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단순히 딸기만 따 먹게 할 수는 없었다. 딸기와 함께 딸기를 활용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상한 것이 바로 딸기 비누와 딸기 떡이었다. 요즘에는 어디가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초창기에는 매우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정보 제공자]

김은옥, (여, 1950년생, 효자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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