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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허씨 묘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675
한자 陽川許氏墓碑
영어의미역 Yangcheon Heo's Grave Monument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현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비석
건립시기/일시 1635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양천허씨|김집
재질 대리석
높이 134㎝
너비 67㎝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지도보기
소유자 광산김씨 종중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 김문의 처 양천허씨 묘비.

[건립경위]

양천허씨는 17세의 나이에 당시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김약채의 아들 김문과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 어린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양천허씨는 이미 김철산을 임신하고 있었는데, 시집이 있었던 연산면으로 내려와 아들을 낳고 가문이 번창할 수 있도록 밑바탕을 만들어주었다.

양천허씨의 아들인 김철산광산김씨가 조선의 3대 가문으로 성장하는 데 일조한 김국광의 아버지였으며, 이후로 광산김씨조선의 대표적인 학자나 사상가들을 배출하게 되었다. 김집은 이런 선조모 양천허씨의 묘 앞에 비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1635년(인조 13) 광산김씨 후손들과 함께 양천허씨의 은덕을 후세에 알리고 공을 칭송하기 위해 묘비를 세웠다.

[위치]

연산역 남쪽에서 국도 1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1.5㎞ 정도 가면 남측에 도로가 보인다. 이 도로에서 2.5㎞ 정도 더 들어가면 고정산 골짜기 안쪽에 김장생 사당이 보이는데 사당 뒤편 골짜기의 북동향 사면에 광산김씨 묘역이 있고, 이 묘역 안에 허씨의 무덤이 있다. 이 무덤 앞에 묘비가 세워져 있다.

[형태]

대리석의 비신을 세우고 팔작지붕 모양의 지붕돌[가첨석]을 얹었으며, 연화 모양을 새긴 농대석을 갖추었다. 높이 134㎝, 폭 67㎝, 두께 17㎝이다.

[금석문]

양천허씨 묘비광산김씨 후손들이 세웠으며, 김집이 찬(撰)하고 서(書)하였다. 비의 앞면에는 ‘유명조선국증정경부인양천허씨지묘(有明朝鮮國贈貞敬夫人陽川許氏之墓)’라고 음각되어 있다. 뒷면의 비문에는 광산김씨 집안이 동국의 이름 있는 집안으로 신라 때부터 가업이 이어져 왔으며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 선조 할머니인 양천허씨 할머니 때문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공을 알리는 비석이 없어 묘비를 세우고 알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양천허씨의 집안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그녀의 높은 행적을 기록하여 후세에 알리고 있다. 비문에는 명문가에서 태어난 양천허씨가 자신의 집안으로 시집 왔으나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고 홀로 되었다고 적혀 있다. 부모가 이를 가엾게 여겨 개가를 시키려고 하였으나, 유복자인 아들을 업고 시집인 연산면으로 내려와 시부모를 모시고 평생을 살았다고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 이런 양천허씨의 행적은 후에 나라에까지 알려져 정려를 받게 되었고 지금도 남아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런 할머니의 성품과 법도, 규범들이 전해져 대대로 내려와 가문이 번창하고 발전하여 이런 행적을 후세에 알린다고 적었다.

[현황]

연산면 고정리 광산김씨 묘역 양천허씨 무덤 앞에 남아 있으며, 비와 바람에 마모되기는 하였으나 대부분의 글씨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보전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비문을 통해 양천허씨가 시집오기 이전부터 광산김씨가 이곳에 터를 잡고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비문을 통해 양천허씨 이후로 광산김씨 집안이 조선의 3대 명문가로 성장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양천허씨가 살았던 당시는 여자의 개가가 허락되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는 남편이 죽은 후 양천허씨 집안에서 그녀를 개가시키려 하였다는 내용이 김집이 지은 비문에 나오고 있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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