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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2202
한자 盜賊窟
영어의미역 Thief Cav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정지리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박종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지명유래담|전쟁담
주요 등장인물 백제 장수|백제군|백발노인|농부
관련지명 구등재|사비성|석성산성지도보기
모티프 유형 백제군의 근거지인 구등재 바위굴|구등재 바위굴을 도적굴로 오인한 농부

[정의]

충청남도 논산시 성동면 정지리에서 도적굴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1981년에 논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놀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삼국시대 백제가 패망할 때의 이야기이다. 사비성에서 끝까지 싸우다가 갈 곳을 잃은 백제군은 석성산성으로 피하였다. 그리하여 전열을 가다듬은 백제군은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을 기습하여 여러 번 승전하였다. 그러던 중 군량이 떨어져 백제군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여러 날 먹지 못한 백제군은 민가에 내려가 백성들의 물건을 약탈하였다. 배가 고픈 나머지 먹을 것만 보면 범처럼 달려들어 닥치는 대로 빼앗았다.

어느 날 밤 백제군 장수는 잠이 오지 않아 방 밖으로 나가 휘영청 밝은 달을 바라보며 망해 가는 백제와 처자식 생각을 하였다. 그런데 언제 왔는지 눈앞에 백발노인이 서 있었다. 백발노인은 지팡이로 땅을 치면서 “네가 장수란 놈이냐? 백제 백성들의 곡식을 강탈해 먹으면서도 네놈들이 백제의 군사라고 할 수 있느냐?”며 호통을 쳤다.

백제군 장수는 노인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직감하며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고는 군사들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노인은 “이곳은 지리적으로 좋지 않은 곳이니 사비성으로 가는 길에 있는 구등재를 찾아가거라. 거기엔 여러 군사를 숨길 수 있는 굴도 있고 먹을 것을 구하기도 한결 쉬울 것이니라.” 하고는 사라졌다.

그날 밤, 백제군 장수는 군사를 이끌고 구등재를 찾아갔다. 백발노인이 말한 대로 바위 아래 굴이 하나 있었다. 백제군 장수는 바위굴에 진을 치고는 사비성으로 가져가는 신라군의 물건을 빼앗아 굴속에 저장해 두었다. 그곳은 석성산성에 있을 때보다 적과 싸우기도 좋았고 신라군을 기습하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게다가 굴속에서 연기를 피워도 연기가 높은 곳으로 빠져나가 적에게 발견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굴속에 숨어서 싸우던 백제군들은 하나둘 늙어 죽어갔다. 이들은 백제가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면서 싸웠지만 백제는 끝내 패망하고 말았다. 이런 가운데 그들은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다. 한 농부가 나무하러 이곳에 왔다가 우연히 굴을 발견하였다. 그는 굴속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물건들을 보고 마을에 돌아가서 도적굴을 보았다고 하였다. 이에 연유하여 이 굴을 지금은 도적굴이라고 부른다.

[모티프 분석]

「도적굴」의 주요 모티프는 ‘백제군의 근거지인 구등재 바위굴’과 ‘구등재 바위굴을 도적굴로 오인한 농부’이다. 「도적굴」은 신라와 백제의 전쟁을 소재로 한 전쟁담이며, 도적굴이란 지명의 유래를 담은 지명유래담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소재를 근거로 한 전설이기에 신령의 지원은 백제의 부활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백제군의 근거지인 바위굴이 훗날 이를 발견한 농부에 의해 도적굴로 불렸다는 것은 패망한 백제를 깎아 내리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고도 풀이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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