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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읍 독립만세운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477
한자 論山邑獨立萬歲運動
영어의미역 Hurrah Movement for Independence in Nonsaneup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진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독립만세운동
발생(시작)연도/일시 1919년 3월 12일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19년 4월 7일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충청남도 논산군 논산읍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의 논산읍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

[개설]

논산읍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의 3·1운동에 호응하여 충청남도 논산군 논산읍 일원에서 1919년 3월 12일부터 4월 7일까지 전개된 일제의 조선 식민지 지배에 항거한 일련의 독립만세운동으로 논산읍민뿐만 아니라 학생과 강경읍민까지 가세하여 합동으로 전개된 운동이다.

[역사적 배경]

1910년 경술국치 이후 10년에 걸쳐 일제는 조선총독부의 설치와 더불어 헌병경찰제를 통한 무력을 앞세워 조선에 대한 식민지 직접 통치를 단행하였다. 이에 조선에서는 일제 식민 통치에 대항하는 항일 독립 정신이 지속적으로 고취되고 있었으며 때마침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국제질서 재편 과정에서 대두된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으로 더욱 큰 자극을 받게 되었다. 여기에 고종의 붕어가 결정적인 기폭제가 되어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명의로 독립선언서가 발표됨과 더불어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면서 충청남도 논산읍 일원의 주민과 학생은 물론 인근 지역의 주민들까지도 이에 적극 동참하기에 이르렀다.

[경과]

1919년 3월 12일 염중오(廉衆午)·염성필(廉聖弼)·박용진(朴容鎭)·유치만(兪致晩)·이백순(李伯純)·손필규(孫弼奎)·이근옥(李根玉)·김태호(金泰昊) 등이 주도하여 강경읍민과 학생 약 100여 명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논산 읍내로 진입하였다. 이에 논산읍민들도 합세하여 만세를 부르는 군중은 약 1,000여 명에 이를 정도였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3일에는 욱정과 취암리에서도 주민들이 부근의 산에서 횃불을 올리고 독립만세를 고창하였으며 취암리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은 배영달(裵榮達)과 배영술(裵榮述)이 주도하여 마을 주민 약 40명이 모정산에 모여 전개한 횃불만세운동이었다. 이어 같은 달 7일에도 논산에서는 약 100명의 군중들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결과]

1919년 3월 12일부터 4월 7일까지 이루어진 충청남도 논산읍 독립만세운동의 결과 이를 주도한 많은 인사들이 일제의 무차별적인 무력 진압에 희생 또는 체포·구금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염중오·염성필·박용진 등이 순국하였으며 10여 명이 구금되었다. 이중 이백순은 징역 10월형을 선고 받았으며 손필규·이근옥·김태호 등도 재판에 회부되어 옥고를 치렀다. 또한 배영달과 배영술은 태형 90대의 형벌에 처해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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