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논산학우구락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452
한자 論山學友俱樂部
영어의미역 Nonsan Students' Association
이칭/별칭 논산학우회
분야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형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학생계몽단체
설립연도/일시 1921년연표보기
해체연도/일시 1932년연표보기
설립자 정낙유(鄭樂裕)|김두남(金斗南)|이계형(李啓亨)|조중용(趙重容)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결성된 학생단체.

[개설]

3·1운동 이후 문화계몽운동이 확산되면서 논산 출신 재경유학생들이 조직하여 1920년대 초반 충청남도 논산지역의 계몽운동을 주도한 단체로 순회강연단의 조직, 축구대회, 정구대회 등을 통하여 상호간의 친목 도모는 물론 논산지역의 신문화운동 확산에 기여하였다.

[설립목적]

논산학우구락부는 충청남도 논산 지역 신문화운동 제창과 민지 계발을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920년대 초반 김두남·조중용·정낙유 등이 중심이 되어 논산학우구락부로 설립되었으며 1926년부터 논산학우회로 개칭되었다. 세부 조직으로 체육부·문예부·강연부 등을 두었으며 회원수는 초기에는 100여 명에 이르렀으나 이후 60여 명 수준으로까지 감소하였다.

초기 임원진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으나 김두남·조중용·정낙유 등이 중심인물로 활동하였으며 1925년 제3회 정기총회를 계기로 회장 조일환(曹日煥), 부회장 이택로(李澤魯), 총무 박창태(朴昌泰) 등으로 임원진을 구성하였다. 1926년부터 논산학우회로 개칭하는 동시에 중등교육기관에 재학하는 학생들도 회원으로 영입하였다. 1933년 공주 영명여학교 격문사건에 회원 김순태(金淳泰)·유석순(劉錫淳)·노수남(盧壽男) 등이 연루되면서 해산되었다.

[주요사업과 업무]

논산학우구락부는 지역민 계몽을 위한 신문화운동, 순회강연 등과 관련된 사업과 업무를 주로 수행하였다.

[활동사항]

하기 방학을 이용한 순회강연단을 조직하여 1921년 7월 21일 강경을 시작으로 22일 논산, 23일 은진, 24일 육곡, 25~26일 인천, 27일 두계, 28일 연산, 29일 노성 등지들 차례로 돌면서 강연활동을 전개하였다. 당시 강연 관련 주제는 김두남 「어찌할까?」, 이계형 「우리의 할일」·「우리의 각오」, 조중용 「평안이 살자면?」, 정낙유 「실력양성이란」, 김석중 「배웁시다」, 이재선 「우리의 요구」 등이었으며, 임석 경관이 내용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중심인물인 김두남을 체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에도 강연 활동은 지속되었다.

또한 조직 내 체육부의 주도로 은진에서 현지 청년단체와 친목 도모를 위한 축구대회를 개최하였으며, 임시총회를 개최하여 신입회원 배가, 축구시합 개최, 기관지 발행, 운동 장려, 동정금 모금 등을 논의하였다. 1928~1931년까지 논산소년회와 동아일보 논산지국 후원을 받아 호남소년축구대회를 개최하는 등 소년운동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을 일깨우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