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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238
한자 金鎭商
영어음역 Gim Jinsang
이칭/별칭 여익(汝翼),퇴어(退漁),문간(文簡)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고수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684년연표보기
몰년 1755년연표보기
본관 광산
대표관직 대사성|좌참찬

[정의]

조선 후기 논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산. 자는 여익(汝翼), 호는 퇴어(退漁). 김장생의 현손이며, 할아버지는 참판 김익훈(金益勳)이다. 아버지는 김만채(金萬埰)이며, 어머니는 이항(李杭)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진상은 1699년(숙종 25) 진사가 되었으며, 1712년(숙종 38)에 정시문과 응시 병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설서·지평 등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1720년(숙종 46) 홍문록에 올라 수찬을 지내기도 하였다. 1722년(경종 2)에는 신임옥사로 천거되어 무산(茂山)으로 유배당하였고, 1724년 영조가 즉위하자 풀려나 이조정랑으로 등용되었다.

수찬·필선·부교리 등의 관직을 역임하던 중 1729년(영조 5) 기유처분으로 실시된 탕평책에 반대하여 퇴거하였다. 그러나 다시 조정에 진출하여 1735년(영조 11) 부제학을 지냈으며, 1738년(영조 14)에는 대사성을 지냈다. 1740년(영조 16) 대사헌을 거쳐 1753년(영조 29)에는 좌참찬에까지 이르는 등 왕성한 정계활동을 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나서는 경기도 여주(驪州)에 은거하면서 산수를 유람하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학문과 사상]

김진상은 철저하게 노론의 입장을 고수하였으며, 1716년(숙종 42)에는 윤선거(尹宣擧)의 서원과 문집목판 훼철을 청하는 병신처분(丙申處分)에 적극 가담하였다. 1719년(숙종 45)에는 희빈장씨(禧嬪張氏)의 묘를 이장할 때 동궁이 망곡(望哭)하려는 것을 막기도 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퇴어당유고』가 전하고 있으며, 글씨도 뛰어났고 많은 비문을 남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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