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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1194
한자 金國光
영어음역 Gim Gukgwang
이칭/별칭 관경(觀卿),서석(瑞石),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충청남도 논산시
성별
생년 1415년연표보기
몰년 1480년연표보기
본관 광산
대표관직 좌의정

[정의]

조선 전기 논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관경(觀卿), 호는 서석(瑞石). 할아버지는 김문(金問)이며, 아버지는 김철산(金鐵山)이다. 어머니는 대도호부사 김명리(金明理)의 딸로서 안동김씨(安東金氏)이며, 아우는 김겸광(金謙光)이다.

[활동사항]

김국광은 1441년(세종 24) 문과에 병과 7인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1445년(세종 28) 황해도도사로 승진하고 1447년 사헌부감찰 및 성균관주부로 명(明)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1449년 전라도도사, 1452년 승문원교리가 되었다. 1457년(세조 3)에 사헌부지평이 되어 이듬해 함안 사람 최옥산의 옥사를 잘 다스리므로 임금이 "김국광이 아니었으면 무죄한 백성을 죽일 뻔하였다."라고 말하였다.

이어 성균관사예를 제수 받았고 왕명으로 『경국대전(經國大典)』 편찬에 착여하였다. 그 후 부승지, 참의를 거쳐 1461년 병조참판에 승진되었는데, 임금이 ‘사지제일(事知第一)’이라는 네 글자를 내리어 포상하고 ‘문무전재(文武全才)’라고 칭찬하였다. 1464년(세조 10) 호조판서에 승진되고 1466년 병조판서가 되었다. 이듬해 우참찬이 되고 병조판서와 오위도총부도총관을 겸하게 하였다.

이어 우찬성에 승진되고 특명으로 도승지를 겸직하였다. 이 때 길주 적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정충출기적개공신 2등에 오르고 좌찬성에 승진되었다. 1469년(예종 2) 우의정이 되고, 1470년(성종 2) 좌의정이 되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좌리공신(佐理功臣) 1등으로 광산부원군(光山府院君)에 봉해졌다.

[저술 및 작품]

세조최항(崔恒) 등과 함께 『경국대전』 편찬에 착수하여 성종 때 완성하였다.

[묘소]

묘소는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 왕대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 왕대리에 있는 김국광의 묘 앞에 2기의 신도비가 있는데 서거정(徐居正)이 구비(舊碑)의 비문을 찬술했다. 구비는 이수(離首)를 갖추고 있으며 임사홍(任士洪)이 글씨를 썼다. 신비(新碑)는 1726년에 건립되었으며 팔작지붕 가담석을 얹고 사각좌대를 갖추고 있다. 비신의 크기는 높이 225㎝, 폭이 100㎝, 두께 23㎝이다. 비문은 구비문을 그대로 옮겨 새겼는데, 서자는 9세손인 김진상의 글씨로 2.5㎝ 크기의 해서이며, 호(豪)와 액(額)은 10세손 김상택의 글씨로 10㎝ 크기이며,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묘와 신도비를 포함한 김국광 묘역은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308호로 지정되어 있다.

김국광의 묘역 앞에 있는 재실 모원재(慕遠齋)는 1623년(인조 원년) 4월 김국광의 6세손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김호(金鎬)·김정망(金廷望) 등이 제창하여 창건하였다. 모원재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08호로 지정되어 있다.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에 있는 김국광 사당은 1483년(성종 13)에 건립된 후 수차에 걸쳐 보수되었다. 사당의 후벽 면에 감실을 두어 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 10월 9일과 12월 10일 후손들이 제사를 모시고 있다. 김국광 사당은 논산시 향토유적 제7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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