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0714
한자 舊江景聖潔敎會禮拜堂
이칭/별칭 북옥감리교회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93-1지도보기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고승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2년 9월 13일연표보기 -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 국가등록문화재 제42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 국가등록문화재 재지정
성격 교회
설립연도/일시 1918년 12월 1일연표보기
설립자 정달성
문화재 지정번호 국가등록문화재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에 있었던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 교회.

[변천]

구 강경성결교회는 1918년 10월 성결교단에서 파송한 정달성 전도사가 충남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93-1번지에 있는 한옥 2칸을 빌려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가 시작되었다. 강경 3·1운동 당시 영국 존 토마스 선교사의 구타 사건으로 변상받은 돈으로 1923년 교회를 건축하였다. 기독교 종말론적 신앙으로 우리나라 유일의 정방형 교회로 지어지게 되었다. 이후 백신영 전도사와 김복희 교사의 지도하에 최초 신사 참배 거부 사건과 최초 일본 역사 교육 거부 사건을 선도하였으며 1943년 이헌영 목사는 천황 심판론을 대두하여 감옥에 갇히며 교회가 잠시 폐쇄되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 교회가 다시 시작되었으며 성도수가 부흥하여 1956년 홍교동 식산은행 자리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때 홍교동으로 옮기지 않은 성도들이 송기섭 목사를 중심으로 교파를 감리교, 교회명을 '강경교회'로 바꾸어 이어 나갔다. 그 후 구임호 목사가 '북옥교회'로 교회명을 변경하였으며, 2002년 9월 13일 '북옥감리교회' 명칭으로 국가등록문화재 제42호에 등재되었다. 2012년에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서 교회를 매입하여 환원하게 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현황]

예배당은 초기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으로 쓰이다가 감리교인이 매입하여 보존해왔고, 2012년 성결교단에 환원되어 현재는 논산시장이 관리하고 있다. 강경 읍내 방향에서 옥녀봉에 오르는 언덕배기 쪽에 위치한다.

[의의와 평가]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은 개신교 한옥 교회로 1923년 이인범 전도사가 설계한 119.01㎡ 규모의 한식 목조 양식 건물이다. 교회 기능에 맞게 정방형 평면으로 지어 건물의 조형성이 전통적 비례에서 벗어나 있다. 또한 가구는 9량 구조로 고주에 결구된 대들보 위에 중보를 얹고 그 상부에 종량을 얹어 초기 기독교 한옥 교회의 건축 양식을 따르고, 가구 기법과 내부 형태 등은 전통 기법을 따라 근대화에 따른 기술적 기법의 변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서까래는 추녀에 뿌리를 결구시킨 말굽서까래 배열로 일제강점기의 배열 기법을 나타내며 처마는 부연을 단 겹처마로 팔작지붕을 이룬다. 내부는 벽돌조 위 회반죽 마감으로 처리하고 연등천장은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시켜 단순한 목조 건축의 구조미를 나타낸다. 당시 남녀유별의 유교적 풍습에 따라 교회 전면에 문을 2개 만들어 남자와 여자의 출입구를 따로 구분하였고 대들보 좌우로 남녀 신도가 따로 앉았다고 한다. 'ㄱ'자 구조와는 차이를 보인다. 강경을 포함한 금강 연안 지역 기독교 선교 역사를 상징하는 대표적 건축물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7.06.14 항목명, [변천] 및 기타 오류 수정 항목명: 북옥감리교회->구 강경성결교회 [변천] 수정 강경 3·1운동 당시 영국 존 토마스 선교사의 구타 사건으로 변상받은 돈으로 1923년 교회를 건축하였다. 기독교 종말론적 신앙으로 우리나라 유일의 정방형 교회로 지어지게 되었다. 이후 백신영 전도사와 김복희 교사의 지도하에 최초 신사 참배 거부 사건과 최초 일본 역사 교육 거부 사건을 선도하였으며 1943년 이헌영 목사는 천황 심판론을 대두하여 감옥에 갇히며 교회가 잠시 폐쇄되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 교회가 다시 시작되었으며 성도수가 부흥하여 1956년 홍교동 식산은행 자리로 이전하게 되었다. 2012년에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서 교회를 매입하여 환원하게 되었다. 인명 수정 정성달->정달성 이인법->이인범 [의의와 평가] 수정 'ㄱ'자 구조와는 차이를 보인다 추가
2014.03.03 [변천] 수정 <변경 전> 현재의 북옥교회는 당시 흥교동으로 옮기지 않은 교인들이 송기섭 목사를 중심으로 교파를 감리교로 바꾸면서 시작되었다. <변경 후> 북옥교회는 당시 홍교동으로 옮기지 않은 교인들이 송기섭 목사를 중심으로 교파를 감리교, 교회명을 강경교회로 바꾸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구임호 목사가 현재의 북옥교회로 교회명을 다시 변경하였다.
2013.11.18 [의의와 평가] 수정 <변경 전> 현재 남아 있는 국내 유일의 개신교 한옥 교회로, <변경 후> 개신교 한옥 교회로
이용자 의견
공*** 성결교회가 홍교동으로 이사하후 3분의 권사님(김현구,임XX, 김XX)이 성인덕전도사님(금테안경을쓰신 할머니전도사님)이 북옥동 감리교회로 개척을 하였으며, 그후 송기섭 목사님이 오셔서 '강경교회'로 바꾸었다가 그후 구임호 목사님이 북옥교회로 교명을 다시 바꾸었지요...
  • 답변
  • 디지털논산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 및 내용 보완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3.01
보*** 내용 중 북옥감리교회가 현재 남아 있는 국내 유일의 개신교 한옥교회라는 설명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강화도 주문도의 서도중앙교회는 1923년 세워진 한옥교회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참고바랍니다.
  • 답변
  • 디지털논산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11.13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