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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000258
한자 改新敎
영어의미역 Protestantism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영구

[정의]

충청남도 논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설]

개신교는 종교개혁의 결과로 로마가톨릭에서 분리되었으며 로마가톨릭·동방정교(그리스정교)와 더불어 기독교 3대 교파 중 하나가 되었다. 전 세계에는 루터교(Lutheran), 장로교(Presbyterian), 성공회(Anglican, 聖公會), 침례교(Baptist), 감리교(Methodist), 성결교(Holiness Church) 등 수백 개의 개신교 교파가 존재하며, 한국에도 200여 개가 활동하고 있다.

[전래 과정]

논산 지역에는 1904년 4월 17일에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논산제일교회가 창립되면서 기독교가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논산제일교회보다 약 1개월 앞서 가야곡의 육곡리육곡리감리교회가 창립되었다. 1904년 3월 15일 서기훈, 서일선, 서성선, 장남진 등이 부여서씨 대종가 집에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써 육곡교회가 태동했고, 따라서 논산 지역 최초의 감리교회는 육곡교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논산 지역에서 가장 먼저 창립된 교회는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의 강경침례교회로, 1889년 2월 10일 교회 창립 예배를 드리고, 1896년 2월 9일 교회를 창립하였다. 그런데도 강경침례교회보다 논산제일교회육곡리감리교회를 먼저 내세우는 것은 1914년까지 강경 지역이 행정구역상 논산에 속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신교의 논산 전래는 논산제일교회를 개척한 미국인 선교사 윌리엄 맥길(William B. McGill)을 제외하면 대부분 한국인이 주도하였으며, 주로 공주 지역의 교회, 선교사, 전도자들에 의해 많이 전파되었다. 개신교 교파 중 감리교회가 특히 많이 개척되었는데, 장로교의 경우 광복 이전까지 논산 지역에서는 선교 활동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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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지역 개신교 전래(구한말~광복 전)

[일제강점기 개신교 활동]

일제강점기에 논산 지역에는 많은 개신교 교회들이 창립되었는데, 일제의 강압 속에서도 주민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함은 물론 주민들의 민족의식 배양에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논산 지역의 사회 발전 및 문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논산 지역에서도 개신교에 대한 크고 작은 탄압이 일제에 의해 자행되었으며, 이에 대한 개신교의 저항 역시 만만찮았다.

특히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에 대해 개신교 교인 학생들이 항거한 사건은 유명하다. 1924년 10월 일제가 강경공립보통학교(현 강경중앙초등학교) 학생들의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이에 반발한 개신교 교인 학생 40명이 참배를 거부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당시 학생들을 인솔했던 여교사가 강제 휴직되었으며, 참배를 거부한 학생들은 모두 퇴학당하였다. 이 사건에 대해 당시 『동아일보』는 1925년 3월 18일과 19일에 걸쳐 「강제참배 문제」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하였는데, 이것은 신사참배에 대한 최초의 비판이면서 논리정연하고 상당히 엄중한 비판이었다.

[교회 현황]

1. 해방 이전

해방 이전의 논산 지역 주요 개신교 교회로는 강경침례교회, 논산제일교회, 외성감리교회, 양촌교회, 북옥교회, 이화교회, 삼호교회, 논산성결교회, 병촌교회 등을 들 수 있다.

1) 강경침례교회

1889년 창립 예배 이후 1896년에 설립되었으며 논산 지역 개신교 교회 중에 가장 먼저 설립된 교회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강경침례교회 역시 일제의 탄압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1916년 일본총독부는 교인들의 명단을 파악하고 그들을 검열하기 위한 사전조치로 강경침례교회에 대한 포교계 제출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 교회를 이끌었던 이종덕이 이를 거부하여 일제에 의해 체포·투옥되었다.

1917년에는 일제가 교회 등록령을 내렸으나 이를 거부하여 2년간 교회 폐지라는 수난을 당하였으며 1940년에도 일제의 탄압으로 다시 문을 닫았다. 또한 1942년 총독부가 침례교 지도자 32명을 원산감옥에 투옥시킬 때 강경침례교회의 이상필 감로도 투옥되었으며 1943년에는 9,915㎡ 규모의 교회 대지를 신사부지로 몰수당하기도 하였다.

2) 논산제일교회

1904년 공주 주재 미국 선교사 윌리엄 맥길(William B. McGill)이 설립하였으나 1905년 안식년으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임으로 로버트 샤프(Robert A. Sharp) 목사가 부임하였으나 1906년 3월 15일 발진티푸스병에 걸려 사망하였다. 이에 부인이었던 엘리스 샤프(Alice H. Sharp)가 남편의 뒤를 이어 전도 사업을 수행하였다.

이후 엘리스 샤프는 1909년 영화여학교와 진광남학교를 건립하였으며, 1913년에는 진광남학교를 폐교하고 그 곳에 16평의 작은 예배당을 건립하였다. 또한 1928년에는 이곳에 샤프 목사의 기념 예배당을 건립하여 이 지역의 선교 터전 마련과 논산제일교회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1932년에는 유치원을 설립 운영하여 식민지 시대 어린 영혼들의 교육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3) 외성감리교회

논산시 부적면 외성리에 위치하고 있다. 1907년 배세라 할머니가 공주의 경천교회 소속 신현구로부터 전도를 받아 교회를 건립하였으며, 당시 교회의 명칭은 기독교 미연회 조선감리회 공주지방 외성교회였다. 1936년 3월 24일 66㎡ 규모의 배세라 기념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4) 양촌교회

1907년 12월 1일 박일래 목사에 의해 인천교회로 설립되었다. 1917년부터 1919년까지 서기원 목사가 독립운동을 주도하면서 독립선언서 낭독과 독립만세 사건으로 일제에 체포되어 1년의 옥고를 치렀다. 이 때 양촌교회 소속 청년회원인 강윤(당시 공주 영명학교 재학)과 장본영도 같이 체포되어 각각 징역 6개월의 형을 받았으며, 많은 신도들도 구류를 살았다. 이후 1921년 큰 홍수를 만나 교회가 대파되었으며 1947년까지 김정숙 전도사 외에 교역자 없이 교회만 남아 있었다.

5) 북옥교회

1918년 12월 정성달 목사가 강경읍 북옥리 93번지에 있는 한옥 2칸을 빌려 예배를 보게 되면서 강경성결교회로 처음 시작되었다. 1923년 한옥 예배당을 건축하여 이후로 38년간 사용한 후 교회가 부흥하여 흥교동으로 이전을 하였다. 현재의 북옥교회는 당시 흥교동으로 옮기지 않은 교인들이 송기섭 목사와 함께 교파를 감리교로 바꾸면서 시작되었다.

6) 이화교회

1924년 2월 은진면 토양리 김창완의 집에서 채운면은진면 교인 40명이 모여 예배를 보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강경감리교회 토양리 기도처로 불렸으나 1926년 4월 김창완, 손정석, 조중구 등 여러 교인의 주선으로 초가로 된 예배당을 건립하면서 기독교대한감리회 강경지방 토양리 지교회로 불리게 되었다.

1932년에 이르러 교인 수가 많아지자 채운면 우기리 419번지[우기길 29-1]에 52.88㎡ 규모의 초가 교회를 설립하고 강경교회 이화지교회라 불렀다. 1937년부터 초대장로 설인수가 취임하였으며 1941년에는 황기주 초대목사가 시무하였다. 1943년 설인수 장로가 교회에 개인 재산을 헌납하여 광복 후 오늘날의 이화교회의 탄생에 초석이 되게 하였다.

7) 삼호교회

1927년 강경황산교회 삼호리 기도처로 시작되었으나 1945년 10월 일제가 물러나면서 남겨둔 소위 적산을 인수하여 삼호교회로 창립되었다.

8) 논산성결교회

1934년 7월 6일 박중래 전도사 등 몇몇 교인에 의해 설립되었다. 1943년 5월 24일 일본총독부의 교단 해산령에 의해 강호석 전도사를 비롯한 교역자가 검속되고 재산이 몰수되면서 교회가 해산되었다. 이후 1945년 11월에 강현선 목사에 의해 다시 건립되었다.

9) 병촌교회

1938년 5월 15일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에 이계섭 목사가 부임해 오면서 시작되었다. 1943년 12월 일제의 탄압으로 교회가 해산되었으나 광복과 더불어 재건되었으며 1948년 6월 15일 새 예배당을 건립하였다.

2. 해방 이후

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논산의 개신교도 해방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였다. 해방 이후의 논산 개신교는 신앙심을 키워 가는 것 외에도 유아교육을 비롯한 기타 교육 활동, 사회복지단체 운영을 통한 불우이웃 돕기 활동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해방 이전부터 현재까지 존속해 온 개신교 교회 외에 해방 이후 새롭게 설립되어 성장한 논산 지역의 주요 개신교 교회로는 장로교 논산중앙교회, 장로교 논산교회, 장로교 제일중앙교회, 그리스도의 교회 등을 들 수 있다.

1) 논산중앙교회

장로교 논산중앙교회는 1947년 3월 독립지사 이근석이 감리교 임준식 집사와 함께 논산 화지리(현 취암동)에 있는 적산가옥을 인수하여 장로교회를 감리교로부터 분리하면서부터 설립 의지가 구체화되었다. 이후 평양 신학생이었던 이광수 전도사, 독립운동가인 이근호 목사와 김창호·이근행·이보형·윤호봉 집사 등을 중심으로 1948년 9월 20일 논산 최초의 장로교회가 설립되었다. 현재 성서대학과 청소년수련원을 운영하며 성서교육은 물론, 청소년 교육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2) 논산교회

1988년 논산시 취암동에 설립되었다. 비교적 역사가 짧고 규모도 작은 편이지만 영세민 자녀와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무료로 서예 교습을 하는 등 참된 인격자 양성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유치원을 운영하여 유아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3) 제일중앙교회

논산 지역의 장애인 및 불우한 사람들과 더불어 1986년부터 복지원 건립을 위해 노력하면서 교회 설립이 구체화되어 1988년 은진면 교촌리에 설립되었다. 현재 교회에서 운영하는 ‘작은 자의 집(당시 믿음의 집)’이라는 복지원에는 오갈 데 없는 중증장애인, 지체장애인, 뇌성마비, 정신질환, 불우노인, 무의탁노인 등이 상시 생활하고 있다.

4) 그리스도의 교회

논산시 연무읍 동산리에 위치하고 있다. 1959년부터 오갈 데 없는 이 지역 고아들을 모아 사회복지단체인 에덴보육원을 설립하면서 시작되었으며, 고아들에 대한 신앙 지도와 더불어 민주시민 육성 교육에도 기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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