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논산백과

강호연군가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13-11-01
  • 구분
    승인기사

한자                 江湖戀君歌 
 

영어음역          Ganghoyeongunga 
 

영어의미역       Pining for Royal Favor at a Remote Plac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충청남도 논산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철희

 



[상세정보]

성격: 시조(時調)

작가: 박증(朴增)[1461~1517]

 

[정의]

조선 전기 산림처사 암천 박증이 지은 단종을 숭모하는 평시조 작품.

[개설]

암천이 1492(성종 23)년 큰댁 사당에 걸려있는 가장·유서배낭에서 등서해온 [무안박씨가장록](두루마리 275×25㎝) 필사본에 시조 [강호연군가] 1수와 한시 [화서산채미가]와 함께 전한다.

 

암천이 어려서부터 부친으로부터 외조부의 충절에 대한 말씀을 듣고, 성장하면서 매일 어머니의 깊은 시름에 잠겨있는 모습을 보고 외가의 몰락에 대한 애달픈 감정이 암천을 강호에 은거하게 만든다. 절의를 지키기 위한 외조부 성삼문의 충절을 생각하면 단종이 떠오르는 것이다.

 

[구성]

시조는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학 장르로 당시의 정서를 담는 정형시의 한 형태이다.

고려시대부터 발전하여 오면서 조선시대에는 서서히 평시조의 틀이 갖추어 지고 율격과 잣수를 지키는 것이 보편화 되었다.

현대시조에서도 옛 문인들이 정립해 놓은 3장(초장, 중장, 종장), 6구(각장마다 2구절), 12음보(각장마다 4음절)를 기본으로 하되 잣수도 45자 내외로 맞추어야 한다.

 

 초장 : 3,4, 3,4.

 중장 : 3,4, 3,4.

 종장 : 3(불변),5(불변), 4,3.

 

그러나 우리의 시조는 3, 4, 5자(字)를 기본으로 하여 약간씩 넘나들 수 있으니 정형의 박자 속에 변화와 진취를 나타낸 조상들의 슬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암천의 시조 <강호연군가>는 3장 6구 12음보인 평시조 1수이다.

 

초장 : 3,4, 4,4,

중장 : 3,4, 4,4,

종장 : 3,5, 4,5. 즉 총47자로 구성 되어 있다.

 

[내용]

강호연군가(江湖戀君歌)는 아래와 같다.

 

江湖에 벌련몸리 각선 님금이라, 강호에 버려질 몸이 생각할수록 임금뿐이라,

淸冷浦 근의 뎌두견아 우지마라, 청령포 밝은 달에 저 두견아 우지마라,

孤臣의 無限셔음 블리올 업서로라. 고신의 한없는 설움 부를 곳조차 없어 하노라.

 

‘강호산림에 숨어살기로 결심한자 심히 생각나는 것은 임금(단종) 뿐이네,

청령포의 휘영청 밝은 달밤에 슬피 우는 숲속의 저 소쩍새(단종의 넋)를 위로하네,

임금(적통 단종)을 잃은 신하(은일 암천)의 한없는 설움은 부름 받을 곳조차 없어 슬프네.’

라고 풀어 써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단종 복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성삼문의 집안은 멸문의 화를 당했다. 자손이 없는 성삼문의 집안은 적막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유일한 혈손인 암천의 어머니는 친정을 생각하면 항상 잠자리에서 베개를 베고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하였다. 부친이 참화를 당한 일도 서러운데 가문을 이어갈 자손이 없다는 사실은 더할 수 없는 아픔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를 아는 암천은 외조부(成三問)에 대한 존숭으로 자신의 영달을 버리고 강호에서 외조부의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산수와 함께 강호에서 지낸 암천의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나 단종(端宗)이란 임금이 자리하고 있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 당하고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쫓겨나 죽은 단종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만 더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조 「강호연군가 江湖戀君歌는 국한문 혼용의 작품으로 은둔할 당시 등서해온 무안박씨세계의 끝에 자신의 휘자 다음 줄에 첫 번째로 적혀있는 유묵인데 은거 이전의 작품이 분명하다.

 

 

[의의와 평가]

암천이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서 강호에 묻혀 살기로 마음먹은 어느 날 영월에 유배되어 죽은 단종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마음을 표현한 평시조이다. 뿐만 아니라 한글창제공신이요 단종충신 외조부 성삼문을 숭모하는 뜻이 숨어 있다.

암천의 평시조 「강호연군가 江湖戀君歌」 1수는 후일 사천 장경세가 지은 연시조 「강호연군가 江湖戀君歌」 12수보다 짧지만 시대적으로 1세기는 앞서고, 사천이 정계에서 밀려나 원망스럽게 임금과 성현을 경모하는 것보다는 암천이 스스로 단종과 외조부의 충절을 흠모하는 것은 내용이나 의미면에 있어서도 서로 다르다고 생각된다. 암천의 시조는 조선전기 당대의 정치 사회적 상황과 잘 부합된다고 본다.

즉 사육신 외조부의 충절 정신을 존숭한 암천은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에서 강호에 은둔하여 세속의 부귀공명과 시비를 초탈하고 자신의 지존을 고고하게 지켜 나가고자 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암천의 평시조 1수에 나타나는 절의정신은 오늘날 물욕과 부귀를 쫓아다니는 많은 세인들에게 귀감이 된다.

 

[참고문헌]

강성복·박철희, 『암천 박증과 모곡서원』(암천사상연구소, 2003)

이향배,『암천 박증의 도학정신과 유물 유적』, “암천 박증의 문학정신” PP.185-186(충남대학교유학연구소, 2005)

김영한,『무안박씨가장록』(충청남도역사박물관)

 

[관련항목]

• 박증           • 성삼문           • 박증 고전문학